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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보편적’ 아동수당을 요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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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2-14 19:21: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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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를 정치권이 망쳐놓았다. 보건복지부는 대선 공약인 보편적 아동수당을 제도화하기 위해 지난 8월 아동수당 지급의 근거 법률인 아동수당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리고 내년 7월부터 0세부터 5세까지 모든 아동에게 월 10만 원씩 지급하기 위해 1조1000억 원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달 초 예산 국회에서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소득 하위 90%를 선별해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선별적 방식과 함께 지급 시기 2개월 연기를 합의했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보편적’ 아동수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아동수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째, 아동수당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박근혜 정부 때 야당과 시민사회가 입법을 통해 아동수당 도입의 공론화를 시도했지만 정부·여당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동수당은 출산율 제고 효과 없이 돈만 낭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동수당을 출산율 제고 수단으로만 간주했던 것이다. 아동수당은 본질적으로 아동의 보편적 인권 증진을 위한 선제적 투자이자 효과적인 재분배 정책이라는 인식이 크게 부족했다. 물론 아동수당은 출산율 제고 효과도 있다. 이것만으로는 출산율 제고가 어렵겠지만 아동수당 없는 출산율 제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해 부족 때문에 아동수당 도입의 정치사회적 공론화는 계속 지체됐다.

둘째, 아동수당 제도는 1942년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 이래로 사회수당의 하나로서 그 성격이 원래 ‘보편주의’라는 데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사회수당은 근로소득을 얻기 어려운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소득보장 제도이며, 필요 재원을 조세에 기반을 둔 국가 재정에서 조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동수당, 장애인수당, 노인수당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재벌 손자에겐 무상급식과 아동수당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보편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선별주의에 대한 오랜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선별적 복지가 온정적 보수의 상징처럼 돼 있다. 잘못된 인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약 250만 명에게 연간 3조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아동수당을 기획했다. 중앙정부의 전국 평균 국고 보조율은 72%이고 내년 7월부터 시행 예정이었기 때문에 6개월 치 예산 1조1000억 원이 잡혔다. 그런데 아동수당에 대한 전반적 이해 부족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 때문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 시기도 연기하자고 주장했고, 예산 국회의 최종 협상이 깨질 것을 우려한 정부·여당이 이런 억지 주장을 수용했다. 결국 지급 대상이 줄었고 시기도 2개월 미뤄졌기 때문에 아동수당 예산은 1조1000억 원에서 7096억 원으로 35.5% 감소했다.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졌고 시민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동수당 제도를 운용하는 OECD 31개 국가 중 20개국이 보편적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선진 복지국가이다. 이들 국가는 당초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보편적 기본권’으로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OECD도 “부모의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정부가 최소한의 아동수당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복지부 관계자들도 “사회수당은 자산조사 없이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주는 것이므로 아동수당이 한국 최초의 보편적 사회수당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소득 상위 10%가 제외돼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지금 깨어있는 시민들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선별주의를 반대하고 보편적 아동수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매우 정당하다. 첫째, 소득 상위 10%를 가려내는 데 엄청난 행정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소득과 재산을 합쳐 매년 상위 10%를 가려내는 데만 연간 300억 원의 행정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둘째, 영·유아 부모들은 재산 관련 증빙서류를 준비해 상위 10%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년 입증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셋째, 납세자와 복지 수혜자가 분리되는 현상 때문에 소득상위 10% 국민을 중심으로 조세저항이 심해진다.

그리고 선별적 복지를 고집했던 야당들은 자가당착에 빠졌다. 지난 예산 국회에서 공무원 확충을 그렇게 반대하던 야당들이 선별적 복지를 수행할 공무원 수요를 늘리는 정책 결정을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선별적 아동수당의 집행을 위해 소득 상위 10%를 매년 선별하는 데만 공무원 500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더해, 소득을 축소한 부정수급이 이루어질 경우 이것을 환수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이게 다 돈이 드는 일이다.

소득 하위 80%를 선별하는 국가장학금 사업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행정비용의 낭비와 소득분위 산정에 대한 반복되는 이의 제기로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애초 보편적 사회수당인 아동수당을 선별적 방식으로 도입하자고 고집했던 야당들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를 내야 한다. 선별적 아동수당은 기존의 선별적 기초연금보다 행정비용이 더 많이 초래되고 영·유아 부모들의 비난도 극심할 게 자명하다. 기초연금을 받는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은 대체로 소득 변화가 별로 없지만 아동이 있는 가구는 소득 변화가 크기 때문이다. 매년 증빙서류를 챙겨야 한다. 장차 대규모 민원과 행정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내년 9월 시행될 아동수당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난 예산 국회의 왜곡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 입법을 포함해 총 10건의 아동수당 도입 법률안이 상정돼 있는데, 입법 과정에서 정부 법률안을 중심으로 보편주의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 이럴 경우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여야 지도부 간의 합의를 깨는 것이긴 하지만, 이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교정하는 일이므로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한 번, 지금 우리 국민은 ‘보편적’ 아동수당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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