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 곳곳에서 행해지던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된 논란으로 정치권이 뒤숭숭하다. 박근혜 정부 4년간 특수활동비 40억 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으며,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재청구가 검토 중이다. 또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국정원에서 1억 원을 상납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여야 의원 5명도 ‘떡값’ 명목으로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과거 특수활동비 발언에 대해 해명을 번복하면서 말 바꾸기 논란을 자초했다.

올해 초 검찰의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특수활동비 논란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일파만파 확대될 것이라고 당시 논란의 당사자들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의혹의 당사자들에게 특수활동비 나눠먹기는 ‘오래전부터 누구나 해오던 것’이며, 그들은 이와 관련해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경우를 찾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정보 및 사건 수사 또는 그에 준하는 국정 수행에 드는 경비로,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에서 대부분 사용된다. 하지만 어디에 사용됐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먼 돈’으로 여겨지면서 원래 목표했던 바와 달리 사용됐고,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던 관행을 문제 삼아도 될 일인가’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당은 참여정부와 국민의정부 당시 청와대가 특수활동비를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전·현 정부를 가리지 말고 검찰의 특수활동비 진실을 규명하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야당은 이에 대해 물타기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한국당의 공세가 물타기용이든 아니든 간에,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생겨난 도덕 불감증의 악순환을 이참에 끊어야 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납세자연맹은 국정원의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출을 특수활동비 대신 업무추진비 등으로 양성화해 공개해야 한다는 요지로 특수활동비 폐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수활동비 관행이라는 적폐를 청산하는 것도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완수해야 할 과제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새누리당에서 대표·원내대표의 특수활동비 공개를 요구하자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 지 보름이 되던 지난 5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 외에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품 구매비용은 자신의 급여에서 결제하도록 지시했다. 기존의 관행은 청와대가 대통령의 필요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을 모두 공적인 비용으로 분류하고 여기에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던 것이지만, 문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는 그런 관행을 없애기로 했다.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할 테니, 특수활동비를 받는 기관들도 공과 사를 구분해 제대로 사용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는 물론이고 수석·보좌관 회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폐청산에 대해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적된 관행을 혁신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간 잘못 운영됐던 특수활동비를 바르게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지금이야말로 특수활동비 적폐를 과감하게 청산할 시기다.

서울정치부 부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