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말이다.

2000년에 개봉된 ‘화양연화’는 중국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다. 17년이 흐른 후 다시 보게 되었다.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장만위(張曼玉) 두 주연의 원숙한 연기를 만끽하며, 오래된 영상 속의 주인공들이 구사하던 절제된 대사와 묘하게 가슴에 와 닿던 4분의 3박자의 단조로운 배경음악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배우자의 외도로 힘들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면서 흔들렸지만 그들의 선택은 그들처럼이 아니었다. 그 외로움과 애틋함을 벽을 사이에 두고, 공간을 사이에 두고,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나누던 안타까운 스토리였다.

왕자웨이 감독은 사람들에게 공간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그 아픔을 통과한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의 완성은 이별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아련함과 그리움 그리고 설렘과 슬픔이 진정 무엇이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어야 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다르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여행을 하느라 며칠 몸살을 앓았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철없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꿈 많던 학창 시절 마음이 울적하거나 시간이 날 때 가장 많이 들락거렸던 곳이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었다. 지금은 음악감상실이 없어졌지만 1970, 80년대에는 음악감상실이 유행이었다. 요즘에야 듣고 싶은 음악을 휴대전화로도 바로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축음기와 레코드판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시대였다.

음악감상실은 음악을 틀어 주는 DJ 부스를 마주 보고 영화관처럼 좌석이 놓여 있고 실내도 적당히 어두워서 혼자서 온종일 구석에 앉아 고독을 즐기거나 잠이 오면 졸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손님도 거의 없어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아서 마음 놓고 음악에 심취할 수도 있었다.

그때 들었던 많은 음악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목소리가 슬픈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의 그 묘한 구슬픈 곡조가 얼마나 마음에 깊이 와 닿았는지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며칠 후면 일 년이 된다. 생전에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죄송함으로 후회와 회한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심장이 조여드는 슬픔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없도록 계획을 세우고 자는 시간까지도 줄여서 일을 했다. 몸이 힘들면,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옅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머니와 함께하여야 했던 일이 얼마나 많은지, 누구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였을 것이다.

열심히 살면서 간절히 원하여도 후회되는 순간이 있고 상처받을 일들이 있고 슬픈 일들이 생기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현실인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돌아가셔도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위로의 말이 슬픔에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그 슬픔과 후회로 더 성숙한 삶을 살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내가 알고 지낸 모든 것은 나의 인생, 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별을 말하기 전에 행복한 시간이여 안녕은 나를 울게 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함께한 시간에 감사할 뿐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울거나 변명은 하지 않을 겁니다. 고맙다는 인사만 할 뿐, 함께 한 시간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것은 무언의 이별입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남은 인생에서 돌아 올 수 없는 시간 ‘화양연화’는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다.

부산대병원 상임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