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은 이루 다 꼽기 힘들다. 외환위기는 정부도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경제주권을 잃은 나라 국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숨김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조사에서 국민들은 양극화·취업난 등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사회·경제적 ‘질병’이 이때 생겼다고 진단했다. 20년이 지난 현재도 이 문제들은 ‘고질병’이 되어 우리 삶을 옥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IMF 외환위기 사태 인식조사 결과는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외환위기가 현재 한국의 어떤 경제 문제에 영향을 미쳤나(중복 답변)’라는 물음에 국민 10명 중 9명이 ‘비정규직 증가’(88.8%)를 꼽았다. 종신고용이라는 믿음이 깨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시작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또 ‘안정적인 직업 선호’(86.0%), ‘소득격차 심화’(85.6%), ‘취업난 심화’(82.9%) 등도 외환위기의 부정적 유산이다.

이 같은 사회·경제적 ‘한국병(病)’에 대한 인식 때문일까. 일반 국민 10명 중 6명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1997년 IMF 외환위기’(57.4%)를 꼽았다. ‘2010년대 저성장’(26.6%),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2%), ‘1970년대 석유파동’(5.1%)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이야기다.

마침 방한 중인 IMF 미션단이 그제 우리 경제성장률을 올해 3.2%, 내년 3.0%로 전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정규직 유연성 확대를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다가온다. 외환위기 최대 악영향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꼽는 국민에게 또다시 IMF가 일자리를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같아 마뜩잖다. 외환위기 20년을 지나서도 더욱 심화되고 있는 취업난과 양극화는 새 정부가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