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冥福)’이라는 용어는 불교와 도교에서 유래한다. 사후를 중시하는 불교에서는 저승 세계를 다스리는 염라대왕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사후 세계의 왕으로부터 심판을 잘 받고 저승에서의 복을 누리길 바란다는 뜻에서 탄생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 바로 ‘명복을 빈다’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흔히 조의의 뜻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고인보다 유족에게 위로를 건네려는 의도로 ‘지 아이 슈 비엔’ 즉, ‘상심하지 마시고 변고에 순응하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편, 서양에서는 ‘평화로이 잠드소서’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repose en paix(허뽀즈 엉 뻬)’, 이탈리아의 ‘Riposa in pace(리포자 인 파체)’, 독일의 ‘Ruhe in Frieden(루헤 인 프리덴)’, 그리고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의 ‘Rest In Peace(RIP, 레스트 인 피스)’가 조의의 뜻으로 통용되는 어구다.

얼마 전 배우 김주혁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수많은 동료 연예인과 네티즌이 조의를 표했다. 하지만 조의로 인해 구설에 오른 사람이 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개인 SNS 계정에 ‘애도는 우리의 몫, 부디 RIP’라는 추모 문구를 게재한 배우 유아인이다. 글귀와 함께 영국 뮤지션 ‘벤자민 클레멘타인’의 곡 ‘콘돌렌스(Condolence, 애도)’ 재생화면 사진을 올린 상태였지만, ‘진정성 없이 겉멋 가득한 추모’라는 지적과 비난이 거셌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고인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타인의 슬픔에 대해 옳고 그르다고 판가름할 권리는 없다. 진정성에 대한 깊이를 자로 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꼭 자필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써야지만 진정한 애도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조의가 단지 표현방식의 차이를 두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고정관념이 여전히 엄격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철학에서는 이 러한 ‘엄격주의’를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극단적으로 엄격한 사고 및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배우 유아인의 ‘RIP’ 발언 논란 또한 지나친 엄격주의의 시각으로부터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한 연예인의 SNS 게시물 해프닝 정도로 일단락된 듯하지만, 엄격주의 사상이 이미 우리 사회 다방면으로 번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간혹 정치권에서도 엄격주의의 양상이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이 사상에 기반을 둔 정책들이 이미 숱하게 존재하거나, 앞으로 더 생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년 전,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콘돔 판매 금지 정책’이 문득 떠오른다. 청소년이 콘돔을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마저 콘돔 검색 자체를 차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성년자에게 성관계 문화를 조장할 수 없다는 뜻으로 제정됐다지만, 콘돔으로 피임 가능한 일을 낙태 수술까지 하게 만든다는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실효성을 무시하고 ‘엄격주의’ 사상에 기인하여 무조건 안 된다고 틀어막는 식의 정책과 논리에 대해서는 서둘러 합의점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정치인들끼리의 논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와 타협 등을 통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해당 사안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국제신문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으면 한다.

전라도-경상도로 양분된 지역감정, ‘여혐·남혐’이라는 신조어로 극단 대립을 이루는 이성 혐오, 종교 간의 대립, 그리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정치권의 진영논리…. 우리 사회는 아직도 ‘누구 편이냐’를 가르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친 극단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성숙한 국민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경성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