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하게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가 선불 유심(USIM)을 이용하는 것이다. 손톱 크기의 칩을 사서 아무 공기계에 끼우면 되는 선불 유심 방식은 일반적인 후불 요금제에 비해 10~20% 저렴하다. 알뜰 성향의 소비자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로, 미국 유럽 등의 일반적인 휴대전화 이용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선불 유심이 불법 ‘대포폰’의 신종 유통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하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부산경찰청이 적발한 선불 유심 불법 유통 조직의 예만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일단 조직폭력배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번에 소탕된 조직은 생활정보지 등에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연락 온 사람들에게 개인 명의로 선불 유심을 개통케 했다. 이들은 유심을 4만~6만 원에 구입한 후 대포폰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12만~15만 원을 받고 되팔았다. 개당 10만 원 안팎의 이득을 챙긴 셈이다. 1년간 불법 유통시킨 선불 유심만 7000여 개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선불 유심을 넘긴 사람들이 제2, 제3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포폰이 필요한 사람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떳떳하게 사용하기 힘든 범죄자들이기 마련이다. 선불 유심을 끼운 대포폰은 불법도박 사이트, 불법 성매매, 보이스피싱, 마약 밀거래 등 각종 범죄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발생 시 선불 유심 명의자도 수사기관의 대상이 된다. 대부분 경제적 약자인 선불 유심 명의자들이 수백만 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런 범죄가 횡행하는 이유는 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단돈 몇 만 원이 급한 신용불량자나 휴대전화 요금 연체자도 신분증만 있으면 선불 유심을 구매할 수 있고, 1인당 개통 회선도 제한하지 않는다. 그러니 쉽게 조직들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에 유심을 팔아서 함께 불구속 입건된 100여 명도 대부분 가난한 대학생, 신용불량자 등이었다.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