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의 일이다. 아내가 갑자기 옷장에 그득그득 쌓인 옷을 뒤로하고 옷이 없다며 백화점을 가자고 했다. 아직 날이 완연하게 풀리지 않았는데 마네킹은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름옷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세일하는 곳으로 가서 외투를 집어 들고는 “나, 이거 살래”라고 말했다. “이 옷은 정가가 너무 비싼데 지금 세일하는거잖아. 쌀 때 사뒀다가 날이 추워지면 입는 거지”라는 게 이유였다.

며칠 전이었다. 아내가 겨울 외투가 없으니 한 벌 사야겠다고 했다. 같은 매장을 지나다가 잊고 있었던 올 초의 일이 문득 생각나서 “올 초에 산 외투는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아내는 이미 시즌이 지났고 요즘 유행이 아니라며 조금 더 ‘트렌디’한 외투를 입고 싶다고 했다. 올 초에 산 유행이 지난 외투는 아내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구박덩이가 된 반면 이번에 산 외투는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매일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가격을 따지면 올 초에 산 외투가 훨씬 비싼데, 왜 아내는 그 외투를 외면하는 걸까.

말(馬)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한 학생의 말을 고르기 위해 국내외를 뒤지고 있었다. 내 마음에 너무나 쏙 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학생도 그 말을 타 보더니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사라고 추천하지 않았다. 좋은 말은 힘이 강하고 고집이 셌다. 자기주장이 강한 이런 말을 소화해내기에 이 학생은 체구가 너무 작고 힘이 약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서운한 기색과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을 느꼈지만 내가 위로했다. “말의 기량은 제가 만들면 됩니다. 말과 호흡을 얼마나 맞출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말의 절대적인 능력만 보지 마십시오.”

원래 사려고 했던 말은 유럽의 내로라하는 선수의 말이 돼 국제 시합을 뛰었다. 그리고 낮은 등급의 시합도 제대로 못 뛰었던 이 학생은 이후 우리가 선택한 말과 함께 국내 시합을 열심히 뛰어 대장애까지 수상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학생이 내게 전화해서 문득 물었다. “그때, 이 말 말고 그 말을 샀으면 제가 유럽에서 뛰고 있을까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너도 말도 아직도 낮은 장애물만 뛰고 있겠지.”

좋은 말이란 ‘나에게’ 좋은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이다. 아마추어인 내가 취미로 즐기고자 하는 말을 고른다면 그 말이 마장마술에서 어떤 성적을 땄고 장애물에서 어떤 성적을 땄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말의 성격이 어떤지, 말이 꾀를 부리지는 않는지, 온순한지, 반동이 괜찮은지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나의 운동 목적과 맞지 않는 말은 아무리 가격이 좋다 한들, 실력이 좋다 한들, 경력이 뛰어나다 한들 아내의 옷장에 있는 구박덩이 외투나 다름이 없다.

나폴레옹의 애마 ‘마렝고’는 전설적인 명마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을 보면 마렝고는 멋있고 용맹스럽다. 하지만 실제로 마렝고는 체고가 142㎝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말이었다. 우리가 일반 승마장에서 취미로 즐기는 승용마보다도 작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같은 단신에게는 작은 말과의 호흡이 찰떡궁합이었기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우리 승마선수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쟤 말 진짜 좋다. 나도 저런 말 타면 잘할 수 있는데.” “말이 저렇게 좋은데 저런 시합쯤은 식은 죽 먹기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저 선수의 좋은 말이 당신에게도 무조건 좋은 말이 될 수 있을지. 당신의 ‘마렝고’는 어떤 말인가.

대명소노펠리체 승마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