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라는 방송의 오락프로그램 형식이 있다. 저런 것도 방송하나 싶은 애초의 이질감은 까맣게 잊고 너무 익숙해졌다.

먹방은 ‘구루메 방구미’, 곧 미식 프로그램이라 통칭하는 일본 상업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 형식을 베낀 것이지 싶은데, 일본어 낱말로 재번역까지 되고 보니 먹방을 우리에게 고유한 것이라 여겨도 무방한 듯, 착시마저 생긴다.

‘단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달콤 짭짤하다의 줄임말이라 어림잡았다. 그리 틀리진 않았지만, 짐작이 정확한 것도 아니었다. 단 것, 짠 것 순서로 먹으면 포만감 없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특정인들의 경험을 담은 말인데, 달콤하면서 짭짤한 맛 또는 미각을 가리키는 데 전용해서 쓰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단짠은 새로운 개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달콤하면서 짭짤한 맛은 짜장면, 족발, 잡채 등등을 맛보고 익숙한데 새롭다니? 맛이야 본래 있는 대로지만 그것을 느끼는 미각은 다르다. 형용할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달콤 짭짤함과 단짠은 격이 다르다. 우리 혀는 느꼈지만 미처 종합하지 못한 탓에 우리말 달콤과 짭짤 사이에 아직 틈이 남아 있는 반면, 예를 들어 달콤새콤하거나 달곰쌉쌀하다처럼 우리에게 이미 각인된 미각의 말에는 빈틈이 없는 것을 보아도 말이다. 다만 달콤새콤이나 달곰쌉쌀과 달리 우리가 미처 달콤짭짤 정도의 말과 개념을 이루지 못한 채 단짠이란 말이 나온 일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먹방의 태생이 구루메 방구미라고 짐작되는 것처럼 단짠은 일본어 ‘아마카라이’에서 왔으리라는 짐작 때문이다. 달다는 뜻의 아마이와 짜다는 가라이 사이에는 틈이 없다. 일본에서 많은 것을 빌리는 우리 현실의 여전한 단면을 여기서 다시 엿본 듯해 공연히 서글펐다. 전해들은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이런 말을 들은 탓도 있을 것이다.

1970, 80년대 우리나라를 자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이다. 부산에서 일본인이 많이 묵은 호텔의 TV에는 으레 일본 방송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월경하는 전파를 방해하기 전, 부산에서야 가냘픈 안테나 하나면 규슈에서 넘어오는 방송쯤 얼마든지 잡을 수 있던 시절이다. 그 무렵 호텔에는 방송 관계자가 장기 투숙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출장차 왔던 그들이 돌아가고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하다 싶은 장면이 TV에서 목격되곤 했다. 소문을 굳이 확인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누구라도 각 방송사의 그 시절 출장비 내역을 뒤져 보면 될 테다.

이런 일들이 방송을 위시한 대중문화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직업 탓에 자료를 찾기 위한 헌책방 나들이가 잦은 편이다. 직접 헌책방을 찾을 겨를이 없다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종종 헌책 순례를 하곤 한다. 헌책방에서 얻은 경험도 그러하거니와 인터넷 헌책 순례에서 목격한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유통되는 일본 서적의 양이 막대하다는 것, 그리고 연대가 멀리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두루 걸쳐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식민지 시절 일본인을 따라왔을 법한 것은 셈하지 않더라도 이제껏 제 손으로 거둬들인 것도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알 듯 모를 듯 모습을 바꾼 채 범람하는 일본 문화의 소식을 접하면서 ‘탈아입구’, 후쿠자와 유키치의 구상이 지금까지는 성공했구나 싶은 생각이 잇달았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탈아입구의 부르짖음이 19세기 일본만 향한 것이 아니지 않았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아시아의 대표를 자임한 일본이 아시아 다른 나라들을 거느린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아시아를 향한 일본 제국의 팽창도 여기서 나왔고 그 결과 패전에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하다.

탈아입구가 남긴 상처는 침략의 대상이던 백성들의 마음을 바꾸었다는 쪽이 더 중할 것이다. 10여 년 전, 일본의 공영방송의 연속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저들의 전통문학 장르인 하이쿠를 짓는 동호회를 지역별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편은 타이베이의 중국인 하이쿠 동호회와 그들이 지은 하이쿠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 하이쿠 동아리가 있다는 소리를 듣거나 그들이 지었을지 모르는 하이쿠를 본 적이 없는지라 식민지의 경험을 공유한 타이완 그들의 마음이 몹시 궁금했던 적이 있다.

시처럼 심령이 깃든 자리가 또 있을까? 익숙한 손은 시인 김수영의 시집을 향한다. 어떤 시를 찾기보다 책날개에 박힌 퀭한 시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신경질을 유일한 재료로 빚은 듯한 얼굴을 시대의 아이콘이라 여겨온 터이다. 기지촌을 저주한 시인의 시선은 태생인 식민지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먹방과 단짠을 마주하고 나서 내가 깃든 이 시대는 식민지와 기지촌을 이어 결국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가늠해본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