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6일 국정감사 갑질 경계령을 내렸다. 증인을 지나치게 많이 불러들이는 일이 하나요, 온종일 질문도 하지 않고 증인을 앉혀 놓을 일이 둘이다. 과도한 자료 요구도 빼놓을 수 없다. 정 의장은 이를 ‘갑질 중의 갑질’이라며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국정감사 증인 신청 실명제’가 처음 적용되니 정 의장 말에 무게가 실릴 만하다. 국감 증인을 부르는 이유를 명확하게 하고 무더기 증인 신청을 막아보겠다는 취지다. 그만큼 갑질 국감의 구태를 벗고 정책 국감을 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다는 이야기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일과 함께 대통령이나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살핀다. 이 국정감사는 헌법과 법률이 그 시기와 대상을 정해 놓은 국회의 중요한 임무다. 제헌헌법이 규정한 국정감사권은 유신헌법에서 잠시 명맥이 끊어졌다가 1988년 부활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요구가 수용된 셈이다.

하지만 국정감사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부실한 증언·답변·자료의 ‘三不국감’이란 지적이 한 예다. 국정감사를 정파적 이해나 국회의원 개인의 존재감을 알리는 수단으로 악용한 탓이다. 여야가 정쟁에만 매달려 증인을 불러놓고도 제대로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니 자업자득이다. 증인을 상대로 호통만 치는 ‘군기잡기 국감’, 허공에 삿대질만 해대는 ‘맹탕 국감’에 현장을 담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목청을 높이는 ‘정치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단골 증인인 기업인들은 증인석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망신주기이고, 경영 공백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볼멘소리를 쏟아낸다. 오죽했으면 ‘존경하는 의원님’ ‘잘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라는 세 마디만 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싶다.

이 때문에 국감무용론에 젖을 순 없다. 짧은 기간에 600개를 훨씬 웃도는 피감 기관을 모두 상대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정책 국감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기다. 다음 달 12일부터 31일까지 이어질 국정감사를 앞두고 증인 신청을 둘러싼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더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등은 물론 주요 기업 총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올해 국정감사 평점도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