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통한다. 한반도의 4배가 넘는 땅덩어리는 북쪽으로 카리브해, 남쪽으로 브라질과 이어진다. 콜롬비아와 접한 서쪽에 석유의 보고 마라카이보가 있다. 나라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마라카이보의 원주민 수상 가옥을 보고 베네치아를 떠올리며 ‘베네수엘라(작은 베네치아)’라고 했단다.

1920년대부터 마라카이보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된 석유는 현재 베네수엘라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강력한 사회주의 정책을 펴면서 ‘남미 빈민의 영웅’ 대접을 받은 배경이다. 그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포퓰리즘 논란 속에서도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석유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차베스 생전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유가는 3분의 1 토막이 났다. 오일 머니에 의존하던 경제가 엉망이 됐다. 공장을 짓고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보다 수입이란 손쉬운 방법을 택한 탓도 크다. 그 고통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식량 부족으로 체중이 줄자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한 대학이 6500가구를 대상으로 생활조건을 조사했더니 75%가량이 먹을 게 없어서 체중이 평균 8.62㎏ 빠졌다는 것이다. 32.5%는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밖에 못 먹으며, 82%가 빈곤 상태란다.

이 와중에 나온 식량난 해소 방안이 논란을 빚고 있다. 가정에서 토끼를 길러 식용으로 쓰자는, ‘토끼 계획’이다. 마두로 대통령이 국영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토끼를 먹자고 호소했다. 고위 관료는 “토끼는 고단백 고기”라며 한술 더 떴다. 토끼는 임신 기간이 한 달 정도로 짧고 1년 동안 40여 마리의 새끼를 낳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 토끼는 우리나라의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로 여겨지니 문제다. ‘대통령이 제정신이냐’는 지적이 야당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식량난과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정국 불안이 더해진 베네수엘라는 위기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이 전망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1660%. 물건을 사려면 지갑 대신 돈다발을 넣은 배낭을 메고 나가야 하고, 상인들은 돈을 세는 대신 저울에 잰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석유가 준 ‘공짜 점심’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하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