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핍박을 받았으나 결국 민주화운동을 통해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아웅산 수치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미얀마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며 사실상 최고 지도자다.

그랬던 아웅산 수치가 최근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됐다. 자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힝야족의 비극’에 이상하리만큼 입을 다물고 있어서다. 소수민족이자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이 살고 있는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는 불교를 믿는 버마족과의 다툼이 늘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최근에는 두 민족 갈등이 유혈사태로 번졌다. 지난달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라는 단체가 경찰초소를 습격한 뒤 정부군이 대대적인 소탕전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사망자가 속출했고 로힝야족 수십만 명이 방글라데시 등으로 탈출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인권단체들은 미얀마군이 로힝야족 민간인을 학살할 뿐 아니라 방화와 성폭행 등 이른바 ‘인종청소’를 저지르는 중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사태가 좀처럼 진정될 조짐이 없자 아웅산 수치의 역할에 주목했다. 누구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아웅산 수치라면 자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참담함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가 보인 모습은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사태 발생 후 줄곧 침묵을 지켰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자 돌연 “로힝야족 사태 보도는 국가끼리 분쟁을 촉발하고 테러범을 이롭게 하는 가짜 뉴스”라는 발언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부에서는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겉보기와 달리 미약해 이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자칫하다가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진 군부에 밉보여 그나마 남은 영향력을 잃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계산을 하든 그건 선택의 문제. 그러나 비폭력 민주주의 및 인권투쟁과 동격으로 여겨지던 아웅산 수치의 신화가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세계인의 마음은 편할 리가 없을 게 분명하다. 지금 국제사회는 “우리가 아웅산 수치에 대해 너무 몰랐다”며 등을 돌리고 있다. 그에게 줬던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