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동물 가운데 낭(狼)과 패(狽)가 있다. 낭은 앞발이 길고 뒷발은 짧지만, 패는 앞발은 짧고 뒷발이 길다. 또 낭은 꾀가 부족하지만 용맹하고, 패는 꾀 많은 겁쟁이다. 그러니 둘은 서로 떨어져선 아무 일도 못 한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난감한 처지를 낭패불감(狼狽不堪)이라 하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위기에 처한 우리 기업들이 꼭 이렇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중국 소비시장을 주름잡던 기업들의 주가가 추풍낙엽이다. 대표적인 중국 소비 관련주 10개사의 시가총액이 지난 8일 44조890억 원으로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7월 7일 61조8302억 원보다 17조7412억 원이나 줄었단다. 사드 배치를 위해 성주골프장을 내준 롯데그룹의 롯데마트, 20년 만에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이마트, 현지 공장 조업중단 사태를 빚은 현대자동차 등의 사정은 익히 아는 바다.
중국 정부는 ‘사드가 생존이 걸린 방어용’이라는 우리 정부 말엔 바늘 하나 들어갈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이렇게 사드와 경제를 연계한 중국 정부 탓에 우리 기업들이 낭패불감의 수렁에 빠진 셈이다.
여기에 편승한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의 막말 사설과 제목 바꿔치기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무례다. 환구시보는 지난 7일자 사설 ‘사드 배치하는 한국, 두 가지 질문에 답하라’에서 ‘사드가 악성종양’이라고 비난했다. 한술 더 떠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사이에 놓인 개구리밥이 될 것” “한국인은 수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평안을 위한 기도나 하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항의하자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 완료한 한국 절대로 더 안전할 수 없다’로 제목만 수정한 사설을 고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낭패불감의 3각 쓰나미에 휩싸인 모양새다. 완강하게 사드 반대 입장인 중국, ‘수소탄 폭음이 조선 인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기고만장한 북한 김정은 정권에 더해 사드 추가 임시배치가 ‘촛불 배신’이라는 진보진영의 비판에 직면한 탓이다. 지난 8일 밤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라며 입장문을 낸 배경이기도 하다.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좌우명처럼 문 대통령이 이를 낭패불감 극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까.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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