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박재혁 의사의 동구 범일동 생가가 아무런 보존 조치 없이 내버려져 있는 건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제적등본에 기록된 그의 생가는 범일동 자성대공원 입구에서 30ｍ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데 본지 취재팀이 현장을 찾아보니, 박 의사에 대한 비석이나 안내표지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20대 나이에 목숨 바쳐 항일투쟁을 했던 그의 생가를 이렇게 둬서는 안 될 일이다.

동래구가 여성 독립투사인 박차정 의사의 생가를 2005년에 복원해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박재혁 의사 생가는 자치단체와 당국의 무관심 속에 묻혀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동구청 홈페이지에는 ‘역사·문화-동구 인물’에 박 의사가 소개돼 있으나, 정작 그의 생가 위치 등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렇다 보니, 생가 인근 범일동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거리’도 찾기가 쉽지 않고 초라한 것 아닌가. 거리 이름과 안내판만 있을뿐 생가와의 연계성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그동안 박재혁 의사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건 생가가 이처럼 방치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박 의사는 1920년 9월 당시 부산경찰서에 위장 침입해 일본인 서장을 폭탄으로 살해한 사건 외에도 여러 항일투쟁을 펼쳤다. 부산상업고 재학시절에 조선역사서를 시내 주요 학교들에 뿌렸고, 지인들과 구세단을 만들어 지역 항일 애국자들에게 단보를 배포하다 일제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부산경찰서 폭탄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박재혁은 감옥에서 ‘왜놈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단식투쟁을 벌이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다. 일제에 맞선 부산 청년의 기백과 항일 독립정신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생가도 복원해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하겠다. 때마침 그의 고교 동문들이 ‘박재혁 일대기’ 출판을 추진하고, 광복회 부산지부도 일제강점기 부산경찰서 자리에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이제는 부산시와 보훈청 당국이 나서야 할 때다. 소중한 독립운동의 자산을 ‘사장’시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