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십여 년 전에 나는 ‘어느 늙은 교사의 눈물’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해방 전 조선에서 교사를 했던 일본의 한 늙은 교사가 김포공항에서 눈물을 흘렸다. 교사시절 철모르는 학생들에게 전쟁에 지원하도록 독려한 것을 참회하는 눈물이었다. 나는 그 칼럼에서 일본 교사가 한국을 찾아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데도 당시 수많은 조선인 교사는 무엇을 하는가? 라고 질타했다.
얼마 뒤에 정말 한 늙은 교사의 전화를 받았다. 내 나이와 신상에 대해 간단하게 묻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 나의 섣부른 판단에 대해 좀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요지의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당시 나는 그 늙은 교사를 오히려 참 한심하게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아직도 우리 교단에 있으니까 우리나라와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뒤 나는 당시 내 칼럼에 대해 편견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편견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데는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하나는 일반적 다다름이다. 보통 나이가 들면 식견도 늘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안목이 생기듯이 많은 사람과 부대끼면서 사람 개인에 대한 판단도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쁘게 여겼던 사람이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해서 -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면만 보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오판이 된다. 내가 단순하지 않듯 남도 단순하지가 않다- 등 평범한 깨달음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다. 앞서 개인의 단면적 평가가 지니는 위험성을 말한 바와 같이 그 개인이 살았던 시대 또는 역사는 개인보다 훨씬 복잡하며, 개인을 그 역사와 관련시킬 경우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건들도 상황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고 뒤틀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살아보지 않은 옛날이야 불문가지가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지성들의 반성은 대단하다. 앙리 루소는 ‘비씨 신드롬’이란 책에서 프랑스사람들의 역사왜곡 인식에 대해서 ‘기억과의 전쟁’을 하면서 전후 프랑스 사회의 역사 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집단의 기억이 만들어지고, 그 기억이 무너지고, 무너진 다음의 강박 상태와 불길한 결말의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1950년대부터 ‘레지스탕스의 나라 프랑스’라는 신화를 만들었고, 1970년대부터 그 억압된 기억들이 터져 나오면서 신화가 깨어졌다. 그것이 허물어진 자리에 강박관념이 들어서게 되고 곳곳에 정당성 강변과 폭로와 비방, 왜곡 시대착오, 과잉 기억, 역사 무력화 등의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는 그런 지성들에 힘입어 마침내 안정을 찾았지만, 우리는 세월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시절 사람들이 거의 살아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 느닷없이 과거와의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역사의 시선을 한 시대(일제강점기)에만 고정시켜놓고 그 시절 피해와 투쟁을 끊임없이 재생시키고 있다. 잠정적으로 우리는 모두 독립투사이거나 그 후손들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그 시절 산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프랑스처럼 기억과의 전쟁을 할 사람도 그런 지성(知性)도 없다.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인 윤동주도 창씨개명을 했다. 더구나 윤동주는 이육사나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처럼 일제에 직접 저항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그의 시를 사랑한다.
만약 앞서 제시한 그런 부정적인 일들로 윤동주 전체의 삶이나 문학을 비난한다는 것은 곧 우리 스스로 위대한 시인을 잃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제국의 영광을 안겨준 손기정의 올림픽 금메달을, 그가 월계관을 쓸 때 가슴에 달려 있던 일장기를 찢던지 수상 거부하지 않았다 해서, 기껏 한 신문에 일장기를 지우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해서 그를 비난할 수도 그 영광까지 부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반면 국민 노래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은 현재 그의 고향 마산에서 친일 문제로 수난을 겪고 있다.
인간을 단면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역사적 인물일 때, 그 시대의 온갖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친일이냐, 독립투사냐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한다는 것은 정당하지가 않다. 우리의 역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우리의 유산이고 현재는 그 바탕 위에 서 있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미래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역사적 피해자로만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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