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마뜩잖았다. 여든 살 노정객이 왼쪽 눈두덩이에 수술 자국이 선명한 모습으로 의회에 나타났으니 하는 말이다. 그것도 뇌종양 진단을 받은 상태로. 이건 또 무슨 영웅담인가 싶었고, 추경 예산안이나 정부조직법 늑장 처리로 가뜩이나 매를 벌고 있던 차에 의결 정족수 미달 사태를 빚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과 비교되었으며, VIP도 아니고 VVIP 대접에 최고의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린 결과 아니겠냐는 등 생각이 교차했다.
미국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나는 곧 돌아갈 테니 기다려라’는 약속을 지켰다.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출신지인 애리조나주에서 병상을 박차고 3000㎞를 날아 워싱턴DC 미 의회의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를 논의하기 위한 표결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호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지의 실낱같은 희망을 되살린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그는 표결에 앞서 15분가량 연설하며 의회의 절차를 강조했다. 군 경력까지 합쳐 50년이 넘는 공직 생활에서 만들어온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셈이다. 그는 전쟁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독이었고, 자신은 해군 조종사였으며, 아들도 미 해군에서 복무 중인 4대 군인 집안이다. 베트남 전쟁 때 5년 이상 포로 생활을 하면서 ‘먼저 포로가 된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와 함께 ‘주한 미군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한국에 감사해야 한다’거나 ‘사드 환경영향평가는 올바른 일이라고 믿는다’는 등 소신을 피력하는 정치인이다.
특히 미 의회에서 대북 강경파로 통하는 그는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이슈에 적잖은 영향력인 발휘하는 미 상원 국방위원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쾌유를 비는 서신을 보낸 배경을 짐작할 만하다.
그의 의회 등원은 이렇게 극적이었지만 사실 예고된 일이었다. 그는 지난달 14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혈전 제거 수술이었다. 그리고 5일 뒤인 19일 조직 검사 결과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체 뇌종양의 12~15%를 차지하며, 평균 생존기간이 1년 남짓한 악성 뇌종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한 등원 의지를 보였다. 그만큼 트럼프 행정부나 공화당 입장에선 오바마케어 폐지가 발등의 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에게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나 그 속내가 사뭇 다르다. 트럼프가 체면을 살려준 그를 추켜세웠다면, 2008년 대선 경쟁자였던 오바마는 병마와 싸우는 그의 의지에 공감했을 터. 오바마케어는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오바마는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하며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붙였다. 건보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겠다는 취지다. 오바마가 모든 국민 의무 가입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건보 시스템을 격찬하며 벤치마킹한 이유다. 트럼프는 재정 부담 등을 들어 이를 ‘재앙’이라며 손보겠단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원칙과 소신을 지켰으나 그 때문에 미국인 수백만 명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아무리 군인 체질이라지만 1936년 8월생인 그가 “보기엔 안 좋은 것 같지만 괜찮다”며 등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의료계에선 두개골을 여는 전통적인 뇌수술 방법 대신 ‘최소절개 뇌종양 수술법’을 택한 덕분으로 본다. 눈썹 위 피부를 최대한 적게 절개한 다음 내시경 도구를 이용해 ‘핀셋으로 집어내듯’ 종양 부위만 깔끔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수혈도 하지 않고, 수술 시간 3~4시간에 입원 기간이 일주일가량으로 전통적인 수술법보다 절반 정도 짧다. 그는 머리카락을 깎지 않았고, 수술 자국은 왼쪽 눈썹 위에 있었으며, 사회복귀가 놀라운 정도로 빨랐다. 그도 정치적 필요와 나이를 고려해 최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수술법은 우리나라에도 활용되고 있다. 1997년 한양대병원이 처음이다. 1999년 고신대병원이 뒤를 이었는데, 현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전문의인 전병찬 박사가 도입했다. 그는 “매케인 사례는 최소절개 수술이 신경외과 분야에서도 쓰이고 있음을 소개하는 계기”라며 “환자를 배려해 사회복귀를 앞당기는 이 수술법을 의료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차이 없이 우리나라에서, 바로 부산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사능 치료와 화학요법을 겸하고 있는 매케인 상원의원은 다음 달 초 워싱턴DC 복귀를 다짐했다. 교모세포종이 만만찮은 병이고 고령임을 감안할 때 완치 가능성을 속단할 순 없다. 하지만 수술 자국까지 없애고 나타나면 그가 받았던 치료법이 재조명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공화당의 정치철학에 충실한 미국 정치인이란 사실과 함께.
논설위원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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