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은 잘 있을까? 피서철이 오니 섬 생각이 난다. 가족들과 차곡차곡 돌았던 대한민국의 섬들….

내가 처음 간 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이었다. 제주도라 불리는 그 섬은 이국적(?)인 가로수로 나를 반겼다. 무려 신혼여행이었다. 가이드로 나온 총각이 뺀질거려 기분을 망쳤다. 50만 원짜리 앨범을 찍어야 한다기에 딜을 했다. 10만 원 줄 테니 우리 카메라로 사진 찍고 끝내자고. 이 전략이 먹혔다. 현금에 녹은 그가 우도행 공짜 표를 마련해주었다. 섬 속의 섬, 우도가 내 인생 두 번째 섬이 되었다. 세 번째는 마라도였다. 날치 떼가 파도 위를 함께 달리던 그때, 그 가을, 사람 몇 안 사는 마라도와 섬 중앙에서 하늘거리는 갈대는 한 편의 판타지였다.

다음으로 이어진 섬이 자월도다. 서해의 섬을 뒤지다 이름에 꽂혀 찾아갔다. 그때 내 안에는 모로코 사막의 보랏빛 노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데 자월도…. 달빛이 보라색이란다. 어떻게 꽂히지 않을 수 있을까? 운이 없었는지, 방문 기간 자월도 달은 보랏빛을 내지 않았다. 대신 동죽이라는 조개를 푸짐하게 내주었다. 아침에는 동죽된장국, 점심에는 동죽구이, 저녁에는 동죽부침개를 해 먹었다. 선착장에서 낚아 올린 우럭도 굉장히 많았다. 고백하자면 숫자만 많았다. 그래도 어린 아들과 손맛 느끼기에는 대박 포인트였다. 재미 들린 나는 서해 섬 일주에 나섰다. 자월도를 시작으로 승봉도, 이작도, 대이작도, 소야도 등을 활보하고 다닌 것이다.

섬 여행은 해마다 남진을 했다. 가는 길에 장고도와 호도를 만났다. 장고도에서는 날씨 때문에 예정된 날에 나오지 못하는 비극도 겪었다. 안개가 너무 심해 배가 뜨지 않은 것이다. 민박집 주인은 좋아했지만 우리는 슬펐다. 추가 민박비에 지갑이 바닥나 버렸다.

호도는 시작부터 드라마였다. 선착장에 도열한 리어카를 잡을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각자 예약한 민박집의 리어카에 짐을 싣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미션. 초행이라 길을 잘못 들었다. 불운의 시작이었다. 속 모르는 주인장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호도에는 소라가 많았다. 뭐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던 터라 출격만 하면 한 양푼씩 잡아 왔다. 라면에 넣고 생으로도 썰어 먹었다. 그 이튿날, 우리는 지옥을 보았다. 욕심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러니까 전날 이미, 막강한 전리품 획득에 고무된 나는 더 크고 더 많은 소라가 있는 곳을 원했다. 주인장께서 그 비밀 장소를 알려주었다. 양파망과 비닐봉지 등을 바리바리 챙긴 나는 노모, 아내, 어린 아들을 앞세워 의기양양하게 출정을 했다.

작은 섬인데도 목적지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늘 걸어 다니는 원주민들에게는 별거 아닌 거리지만 자가용 좋아하는 외지인에게는 먼 거리라는 걸. 물어물어 목적 해안에 다다르자 거센 소나기가 환영 인사를 해왔다. 우산 하나 없이 노출된 우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소나기는 낙뢰까지 동반해 우리를 닦아세웠다. 코앞에 떨어지는 낙뢰를 본 적이 있는가? 텅 빈 바닷가에 손에 쥔 건 양파망과 비닐봉지. 수평선 위로 번개 치고 전류가 자글거릴 때마다 지옥이 열렸다 닫혔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리지만 아이 앞이라 떨지도 못했다. 우리는 패잔병 꼴이 되어 민박집으로 후퇴했다.

돌아오는 날의 아침, 산책으로 마음을 달랬다. 해변을 걸으며 음이온 호사를 누릴 때 눈 비비며 다가오는 아들이 보였다. 해변에 굴러다니던 둥근 부표를 굴려 보냈다. 공 좋아하는 아들이기에 어제 고생시킨 것에 대한 위로였다. 평소 같으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바라보았을 아들이 호날두처럼 달려와 강슛을 날렸다. 악, 비명과 함께 아들이 주저앉았다. 부표가 나무처럼 단단했던 것이다. 발가락이 금세 부어올랐다. 미안한 마음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다행히 아이 발가락은 약간의 부기로 끝났다. 비껴 맞은 게 행운이었다. 만약 거기서 아들 발가락이 부러졌다면? 아내의 어명에 의해 나 혼자 섬에 그 유배되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이 오면 섬을 생각한다. 호도를 생각한다. 그러면 바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추억도 때로는 에어컨이 된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