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가 구린 돈’을 가진 전 세계 부호들이 한때 가장 선호한 금융기관은 스위스 은행들이다. 고객의 신상을 절대 알리지 않는 비밀주의 때문이었다. 검은돈을 소유한 까닭에 언제 어떻게 자금 추적을 당할지 모르는 부호들의 처지에서는 지구상에 이런 별천지가 없는 셈이었다.

그랬던 스위스 은행들은 20여년 전 비밀주의 원칙을 깨고 휴면계좌를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2차 대전 때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생전에 맡겼던 예금을 유가족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국제적 비난이 일고부터다. 유대인 단체들은 스위스 정부와 은행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액수 공개와 함께 반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국제금융계의 휴면예금 추정액은 21억~61억 달러였다.

2001년 마침내 스위스 은행 측은 유대인들 것으로 추정되는 휴면계좌 2만1000여 개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재미있는 건 천재 과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도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1933년~1945년 사이에 계좌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은행 이야기는 특수한 사례에 포함되나 사실 금융권에 맡겨둔 ‘숨은 돈 찾기’는 어찌 보면 뜻밖의 횡재다. 본래 자기 것이건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로소득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31일부터 6주 동안 ‘장기 미사용 계좌 정리하기’ 캠페인을 벌였더니 휴면계좌 94만5000개가 해지됐다. 고객들이 찾아간 돈은 3706억 원, 1계좌당 환급금은 평균 39만2000원이었다.

잔액 50만 원 이하인 계좌가 95.8%나 됐지만 100만 원 이상 남은 경우도 3만3000여 개나 됐다. 한 은행에서 60대 여성이 2억 원을 찾아갔다는 소문이 나오고 3500만 원을 인출한 30대 여성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복권당첨이나 다름없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얼마나 재산이 많았길래 이런 거액을 잊고 살았을까’라고 부러워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휴면예금을 확인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계좌통합관리서비스를 이용하면 한번에 조회가 가능하고 잔액 이전 및 해지처리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심풀이 삼아 검색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듯하다. 대박은 아닐지언정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밥 한 끼와 술 한 잔 정도는 살 만한 돈이 기다릴지도 몰라서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