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곡성군의 인구는 3만 명 남짓이다. 여느 소도시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인구가 줄면서 존폐의 기로에 몰렸다. 이런 위기를 넘기게 한 건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곡성군은 1999년 전라선 복선화로 폐선이 생기자 이곳을 관광지로 만들었다. 옛 증기기관차를 흉내낸 디젤기관차가 10㎞를 산보하듯 달린다. 입소문이 나면서 섬진강 기차마을은 지난해 120여만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에 다녀온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말하는 건 열차 내에서 주전부리를 먹는 재미다. 어린 세대는 본 적조차 없을 ‘교련복’을 입은 판매원이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판다. 이 가운데는 열차 여행에서 빠질 수 없다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도 있다. 처음에는 판매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나이 지긋한 이용객들의 요구에 따라 취급을 하게 됐다고 한다.

KTX는 꿈도 꾸기 어려웠던 시절에 완행열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떠올린다.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모를 지루한 여행에 지칠 때쯤이면 슬슬 허기가 지게 마련. 이때 객차 통로를 지나는 주전부리 판매원은 가뭄 끝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급하게 목으로 넘기던 삶은 달걀로 행여 체하기라도 할까봐 같이 마셨던 사이다의 맛은 표현하기 힘들 만큼 짜릿했다.

열차 내에 먹거리가 등장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코레일 측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만들어진 ‘철도강생회’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 철도강생회는 식음료 판매 수익금으로 철도 유공자나 부상자들을 도왔다. 이후 이 조직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1967년에는 ‘홍익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은 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 관광개발’이 판매업무 등을 담당한다.

하지만 고속화시대가 되면서 기차 여행 중 주전부리를 먹는 즐거움도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게 됐다. 서너 시간 내로 목적지에 다다르는 까닭에 음식을 사먹는 승객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코레일은 열차 내 먹거리 판매를 줄이려 하고 있다. 적자가 연 30억 원에 이르는 등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게 이유다.

효율성을 최고로 여기는 현 시대의 흐름은 누구라도 외면하기 힘든 법. 철도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열차 안에서 먹던 삶은 달걀의 맛과 추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터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