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10여 년 전,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탄소배출권을 사기 위해 거래소를 찾아왔다. 이들에게 온 이유를 물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환경보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은지 분임별 토의과제를 냈다. 그러자 한 그룹에서 탄소배출권을 매입하여 이를 전미 폐 협회에 기증하여 소각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탄소 등 대기오염 물질의 배출권을 사들여 그만큼 배출 못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 같으면 페트병 분리수거, 우유 팩 모으기 정도의 생각에 머물렀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 미국 초등학생이 탄소배출권을 매입하기 위해 돈을 모은 방법도 특이했다. 이들은 학급에서 껌을 씹을 수 있는 권리를 1달러에 팔아 기금을 모았다고 한다. 권리를 파는 금융상품은 옵션이라 불리는 파생상품이다. 현재 탄소배출권은 ｔ당 시장에서 1만 원대에서 2만 원대로 거래된다. 초등학생들이 이런 종류의 금융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졌다는 것은 놀랍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 위에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활용, 산업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예고는 금융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오랜 기간 정부의 보호 아래 안정된 사업을 영위해온 금융은 환율, 금리 자유화로 심각한 영업환경의 변화를 맞았다. 1971년 미국은 달러화와 금의 교환을 정지시키면서 환율은 정부가 지정하던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또 금리에 대한 규제 철폐로 이자율마저 고정금리에서 시장의 수급에 따라 정해지는 금리자유화로 바뀌었다. 여기에 1986년 영국이 ‘금융빅뱅’이라 불리는 금융개혁을 단행하여 은행, 증권, 보험 등 업종 간 칸막이를 없애고 외국에 문호를 전면 개방했다. 그러자 금융산업은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난관을 돌파했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파생상품과 다양한 펀드의 등장이었다. 우유와 같은 원재료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치즈, 버터 등 다양한 유가공품을 만들어내듯 주식, 채권, 외환, 원자재와 같은 금융 원재료에서 주가지수·금리·환율·원자재 선물·옵션과 같이 다양한 파생 금융상품을 개발해 냈다. 한편 펀드는 주식 채권 등의 금융자산에서, 석유 금 부동산 선박에 이르는 실물자산, 여기에 날씨 탄소배출권 경기변동성 등의 관념적 자산까지 모두 거래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만들었다.
신상품 개발을 뒷받침한 것은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이었다. 이를 계기로 금융회사는 거대한 전자플랫폼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금융은 매 순간 선물, 옵션 등 자산 가치를 정확히 산출해 내기 위해 물리학, 수학 등 금융공학과 접목하고 업무체계 전반을 전산화시켰다. 인터넷거래플랫폼인 대체거래시스템(ATS)이 거래소와 경쟁하고, 증권사도 영업점이 없는 인터넷 증권사가 생겨났다. 인터넷·모바일 전업 은행까지 탄생했고 나아가 통신회사가 은행이 되고, 중국의 알리바바처럼 전자상거래기업이 금융을 거느리는 산업 간의 융합이 나타났다.
전자플랫폼화된 금융은 빅 데이터,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 금융의 빅 데이터는 고객 거래패턴을 실시간으로 점검하여 부정 거래를 가려내 공인인증서를 필요 없게 만들었으며, 대출심사를 위한 신용도 조사도 대폭 간소화시켰다. 한편 컴퓨터가 최적의 가격과 매매 시점을 찾아 자동으로 주문을 내는 AI형 자동매매시스템이 도입되어, 미국의 경우 주식거래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환전, 개인 간 자금대부, 자산관리 등의 분야에 핀테크 기업이 등장하여 금융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의 틀은 이미 깨졌다. 금융은 예금과 채권·주식 거래를 통한 ‘자금의 융통’에서 벗어나 자산의 종합관리, 리스크의 관리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 탄소배출권 거래 등 사회 문제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조기금융법안을 만들어 초등학교부터 주식모의투자 등 실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금융경제교육은 아직도 화폐란 무엇인가, 저축의 필요성 등 경제원론 교과서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2015년 부산에 소재한 한국거래소 내에 개설되었다. 우리 초등학생들도 환경문제까지 금융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창의적 교육이 절실하다.
한국IR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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