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에릭 슐로서의 저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살펴보면, 표지에서부터 섬뜩한 문구가 적혀 있다. '패스트푸드가 당신의 생명을 노린다'라는 문구이다. 발간된 지 16년이나 지난 옛 서적이지만, 표지면 이 문구의 예언은 적중한 듯하다. 성인병과 비만의 주범으로 꼽히는 패스트푸드가 현재 미국을 OECD 국가 중 가장 뚱뚱한 나라로 만들었고, 패스트푸드의 대량생산을 위해 약물 주사와 사료를 먹고 자란 소들은 우리에게 광우병·식중독과 같은 끔찍한 질병을 일으켰다. 급기야 '햄버거병'이라는 질환까지 가세해 우리의 건강은 쉴 새 없이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 못지않게 염려되는 점은, 패스트푸드 산업이 현대 인간 사회에 얼마나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 잡았는지의 여부이다. 건강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면에서까지 비윤리적인 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있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의 일부 내용에 의하면, 미국의 한 햄버거 업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싼값에 고용하고 노동을 착취해 시간당 수백 마리의 소를 도살했다. 하지만 도살 과정 중 빈번히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부상이나 사고·사망은 별다른 조치 없이 묵인됐다. 도살장은 소의 피가 발목까지 차오를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었고, 노동조합 등의 단체 결성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식품 공정 과정을 검사받게끔 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업체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로비활동을 벌였다는 사례도 있었다. 미국을 예로 들었지만, 위 책에서는 패스트푸드 산업이 정치인들과 연줄을 맺고 뒷거래를 하는 등의 충격 사례들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미 수많은 패스트푸드 업체가 우리 일상 속 깊이 침투해 온 만큼, 패스트푸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존재이다. 다만, 햄버거 하나로 인해 국민의 건강이나 노동자의 인권 또는 국가 정부의 도덕성이 빼앗기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비자인 우리 역시 패스트푸드를 이용할 때 경각심을 갖고 신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단순한 먹거리 차원을 넘어 사회·정치적인 문제로 패스트푸드를 바라볼 때, 언론이 힘을 받쳐준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선 소비자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제 및 법률이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는지 언론만의 시각으로 면밀히 진단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업체와 국민의 대처가 원활해지도록 평상시에 위험요소를 분석하고 감시하는 데 언론이 앞장서 주었으면 한다. 국민이 먹거리 문제를 통해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성찰할 수 있게끔 국제신문이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갑론을박이 격화되고 있는 국내 햄버거병 사태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해당 아이의 상태에 대해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가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인공심폐기에 의지한 채 투석을 받는 아이의 모습은 볼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사태 이후 꽤 많은 사람이 이번 소송의 진상 규명에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과, 여기저기서 퍼지고 있는 '햄버거 포비아' 증상은 안전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고스란히 투영된 사례인 것 같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전 과민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분위기가 '안전 불감증'으로 뒤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국제신문이 기사 외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손쉽게 안전 가이드라인을 알려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14여 년 전 미국에서도 맥도날드와 각종 식품업계에 한창 소송 바람이 불던 때가 있었다. 미국 청소년 비만의 주범이 된다는 이유로 해당 업체들을 고소한 '비만 소송'이었다. 이 비만 소송들은 전부 기각돼 실제 재판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이후 미국 식품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오레오 쿠키와 치즈로 유명했던 식품회사 크래프트 푸드는 제품 규격과 지방·설탕 함량을 줄였고, 맥도날드는 일부 햄버거를 축소하고 샐러드를 메뉴에 추가시키기도 했다. 우리가 이번 '햄버거병' 사태를 통해서도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희망은 '앞으로의 변화'이다. 사태를 통해 어떤 점이 어떻게 개선될지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위기를 인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경성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