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이다. 큰딸이 고2 때, 다니던 자사고(자율형사립고)가 갑자기 일반고로 전환을 발표했다. 학부모들은 재단 마음대로 이런 법이 어딨느냐고 격렬하게 반대했다. 학교 측은 심각한 재정난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다며, 대신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를 유지한다고 설득했다.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반대했지만 결국 일반고로 전환했다.

아이의 교육에 관해 '아빠의 무관심'이 정답인 줄 알았던 기자는 남의 일 보듯 했다. 학부모 집회에 참여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서명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 학교에 가길 원해서 보냈을 뿐 크게 관심 두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일반고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수업료를 내고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얼마만큼의 혜택을 받는지도 의문이었다.

자사고 폐지 문제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다. 울산의 성신고가 올해 일반고 전환을 놓고 똑같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수도권에는 반대로 자사고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는 교육 당국과 이에 반발하는 학교재단과 학부모가 싸우고 있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자사고와 외국어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상당한 반발이 있겠지만 진보교육감 출신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폐지는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가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은 교육개혁과는 거리가 있다. 대부분 교육이념 때문이 아니라 재정난 탓에 자사고를 포기한다. 교육부 지원 없이 재단의 자금력과 등록금만으로 학교를 꾸려야 하니 살림살이가 쉽지 않은 탓이다.

자사고는 2002년 고교 다양성과 사학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자립형 사립고'에서 출발했다. 이후 교직원 채용이나 학교 재정운영 등의 자율성을 더 늘린 '자율형사립고'가 2010년 시작됐다. 현재 자사고는 전국에 46곳이 있고 이 가운데 절반인 23개가 서울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외고와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의 정상화다. 외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 서열은 이미 굳어져 있다. 아이를 외고, 자사고에 보내기 위해 부모는 초등학교부터 선행학습을 시킨다. 고액 사교육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득이 학력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 지 오래다.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지금, 자사고나 외고를 그대로 둔 상태로는 고교 서열화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깨부수겠다는 거다. 지난 정권도 일반고 정상화를 추진했지만 '있는 집'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반면 폐지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의 다양성이다. 정부가 교육의 획일화와 하향 평준화를 조장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자사고를 고교서열화의 주범으로 매도하지 말라는 거다. 폐지한다고 서열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식 공부 더 시켜 좋은 대학 보내겠다는 게 죄냐고 항변한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일리 있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사교육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 8학군으로 대표되는 부자 동네 학교가 교육특구로 부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사고를 폐지하면 최소한 '있는 집' 아이들이 명문대를 차지하는 '금수저 독식' 구조는 깰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소득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전국의 3%에 불과한 자사고·외고 출신이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생의 30%를 차지한다. 이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아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사회다.

교육개혁과정에서 많은 저항이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 등 정책 결정권자들의 자녀 14명이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다녔다는 이유로 '내로남불'이라는 공격이 벌써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교육개혁은 이것저것 다 재보고 신중하게 하다간 이도 저도 아닌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권력이 힘이 있을 때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직진하는 과감성이 필요하다.

올해 둘째 아이가 고3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아빠의 무관심'이 정답이 아닌 줄은 깨달았지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번에도 아이의 진학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입 전형방법이 천몇백 가지라 들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온전히 부모의 능력이라지만 '젠장, 알아야 면장을 하지'. 수도권 학원에 3000만~5000만 원을 들이면 '학종'으로 대학을 간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떠올리며 차라리 1등부터 줄세워 성적순으로 자르던 옛날 입시가 좋았다는 동료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던 생각이 난다. 이 정부의 교육개혁이 꼭 성공해 세상의 모든 '무관심 아빠'가 더는 교육문제로 곤란을 겪지 않는 세상이 어서 오길.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