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통과의례처럼 찾는 곳이다. 특히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종주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몇 차례고 도전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곧바로 나타나는 게 제석봉이다. 대다수는 죽어서 하얗게 뼈를 드러낸 나무들만 가득 서 있는 특유의 풍경만을 기억하겠지만 물론 이곳이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불과 60년 전에만 해도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원시림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수한 죽은 나무만 볼 수 있다. 서 있는 나무, 쓰러져 바닥에 드러누운 나무들이 수십 년 세월을 버티고 있다.
흔히 이곳을 제석봉 고사목 지대라 부르며 생명의 유한함, 시간의 덧없음을 말하며 지나다닌다. 때로는 이 자체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제석봉에 숱하게 죽어 있는 구상나무의 본질은 세월의 무상함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이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던 구상나무 숲이 이렇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 권력을 등에 업은 토호와 도벌꾼들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 장관 자리를 하던 이의 조카가 삼촌을 등에 업고 도벌을 주도했다. 이들은 장터목 아래 제재소를 차려두고 이 일대의 나무를 무차별로 베어내 산 아래로 실어날랐다. 그러던 중 1959년 8월 한국산악회 학생산악훈련단에 참가한 사진가 김근원 선생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사진을 찍어 이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도벌꾼들은 조사단이 온다고 하자 도벌의 흔적을 없앤다며 산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제석봉이다. 고로 이곳은 고사목(枯死木) 지대가 아니라 소사목(燒死木) 지대이자 나무들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지리산은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가 인정돼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50년이 흘러 올해 2017년은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 사이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리산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 가운데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현재 지리산의 모습을 50년 전 지리산과 비교해 얼마나 국립공원의 목적에 부합했는지 평가해 볼 일이다. 아무래도 보존보다는 이용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보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도 면밀하게 사전조사와 연구를 거쳐 찾아낸 방법인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리산 곳곳에서 이뤄진 생태계 복원사업도 그러하다. 일례로 제석봉 구상나무 복원을 들 수 있다. 20여 년 전인 1993년과 1994년 2년에 걸쳐 산림청은 제석봉 일대에 구상나무 묘목과 씨앗을 뿌리는 인공조림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이후 오늘날까지 직접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풍경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환경부가 나서 제석봉에서 멀지 않은 세석평전을 비롯해 벽소령, 삼각고지 등에 구상나무 묘목을 심었다고 한다. 사업 추진 이유가 '기후변화에 취약한 숲 보호'라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라 고온에 취약한 아고산 침엽수종인 구상나무숲이 자연스럽게 쇠퇴하는 상황에서 큰 비용을 들여 인위적으로 숲을 유지하려는 일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이와 함께 국립공원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경제계가 가하는 개발 압력도 지리산을 힘겹게 하고 있다. 케이블카 사업 추진은 참으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이 문화재청을 상대로 제기한 설악산 오색 삭도(케이블카) 행정심판에서 승소해 국립공원 내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그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경남도가 추진하는 산청군 중산리~장터목~함양군 추성리 구간의 산악 케이블카는 2012년 이후 환경부가 공익성과 환경성 등이 미흡하다며 사업신청을 세 차례나 반려했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그런데도 경남도는 조만간 노선을 변경해 네 번째 도전에 나설 모양이다. 전남 구례군과 남원시도 따로 케이블카를 추진 중이다. 인간의 욕심은 50여 년 전처럼 지리산을 망가뜨리는 일을 아무런 고민 없이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또 50년 뒤에 지리산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조차 든다.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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