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부산 동구 범일5동 마을재생사업이 결실을 맺으려는 단계에서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사업을 주관하는 마을관리사무소 '마실'이 지난 5월 말 폐쇄됐기 때문이다. 재개발 바람이 원인이다. 범일5동 마을재생사업은 비싼 분양가로 인해 원주민이 쫓겨나야 하는 아파트 건설 위주의 재개발이 아닌 주민 자율적으로 주거·건강·복지 등 마을환경을 개선하는 공동체 보존형 프로젝트여서 '마실' 폐쇄는 예사롭지 않다. 취지와 추진 방식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정책'이나 부산시의 '다복동(다 함께 행복한 동네) 사업'의 선구적 모델이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도서관 운영, 동네잔치, 건강검진, 웃음치료, 재무상담, 홀몸노인 돌보기, 노인 이불 빨래 등 '마실'은 2015년 문을 연 뒤 2년간 다양한 사업을 벌여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24.1%)이 부산 평균(14%)보다 10.1% 포인트나 높은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마을재생사업이었다. 이름 그대로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 셈이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이 사업을 마을재생 모범 사례로 선정하고, 다른 지자체들의 벤치마킹이 이어지는 데서도 의의와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범일5동 마을재생사업의 벽은 결국 재개발이다.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주민 동의를 받으면서 건물주가 임대를 거부해 '마실'이 폐쇄됐다. 문제는 이 사업이 좌초될 경우 다복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다복동은 주민 스스로 재생 기반을 마련하는 복지공동체로, 부산시는 내년까지 205개 동에서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부산은 재생 대상 동네 비율이 82.7%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아 다복동 성공 여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복동이 잘되려면 범일5동 마을재생사업이 순조롭게 풀려야 한다.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실태와 애로를 파악하는 한편 사업의 구심점인 마을관리사무소를 재개원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을재생은 사업 추진이 힘든 만큼 작은 성과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