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광주 5·18국립묘지를 방문해 방명록을 남겼다. 평소 방명록에 사자성어를 즐겨 쓰던 그는 이날도 붓펜을 들고 일필휘지로 '멸사봉공(滅死奉公)' 넉 자를 써내려갔다. 참배를 마치고 나가던 홍 후보에게 측근이 갑자기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滅死'를 '滅私'로 고쳐 새로 방명록을 작성했다.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공공의 목적을 받든다'는 뜻인 '滅私奉公'의 '사사로울 사'를 '죽을 사'로 잘못 썼던 것.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지만 홍 전 지사는 굳건했다. 기자들이 잘못 쓴 글자에 대해 묻자 "이곳이 국립묘지이고 이 분들이 죽음으로써 항거를 했기 때문에 '죽을 사' 자를 썼다가 다시 쓰라고 해 썼을 뿐"이라고 했다. 과연 거침없는 홍 전 지사다운 해명이었다.

사실 정치인에게 방명록 오기는 흔한 일이다. 특히 대선 후보급이 되면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고 카메라가 집중되는 탓에 누구든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유달리 방명록 실수가 잦은 데다 같은 잘못을 반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설에 오른 건 잘 알려진 사실. 종류도 다양했다. '습니다'를 '읍니다'로 쓴 것은 맞춤법이 바뀌기 전 세대이니 그나마 봐줄 만했다. '바치겠습니다'를 '받치겠습니다'로 쓰거나 주술관계, 조사가 틀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급은 아니지만 홍 전 지사처럼 다른 대선 후보들도 사소한 실수가 없지 않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2012년 '꿈꿉니다'를 '꿈꿈니다'로 적었다가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실제 안 전 대표는 한 강연에서 글씨를 잘 못써서 컴퓨터를 배웠다고 할 정도로 방명록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길 백악관에서 남긴 방명록을 두고 설왕설래 말이 많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을 '대한미국'으로 나라 이름을 잘못 적은 것. 이를 두고 '큰 실수'라는 비판론부터 '긴장되는 자리였을 테니 저런 실수쯤이야'라는 옹호론이 맞선다.

만약 보수 진영 대통령이 같은 실수를 했다면 진보 진영의 비난이 만만찮았을 터. 그래선지 문 대통령의 실수가 '전략적인 실수'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실제 보수 진영에서 봐도 '대한미국'이란 말이 마치 굳건한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것 같아선지 심각하게 물고 늘어지는 분위기가 아니니 그럴 듯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이야 그렇다 쳐도 전직 누구처럼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