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역사는 유구한 인류 문명과 궤적을 같이하지만, 팬티로 범위를 좁혀 보면 그리 길지 않다. 삼각팬티가 발명된 건 1951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반바지 속옷을 입었다. 발명자는 사쿠라이라는 일본 여성이다. 무더운 여름날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 속옷을 입고 갑갑해하는 손자가 안타까웠던 그는 고민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테트론 천으로 만든 자루를 싹둑 잘라 삼각팬티를 제작한 것이다.

삼각팬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반바지 속옷을 개량한 사각팬티(트렁크팬티)와 함께 남성 아래속옷의 양대 축을 이뤘다. 이렇게 정형화된 남성 팬티는 진화를 거듭했다. 우리나라 남성 팬티시장에 패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90년대 초반 프린트 등 고급염색기법으로 화사한 무늬를 넣은 사각팬티가 나와 인기를 끌면서 흰색 삼각팬티의 3배에 이르는 가격임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90년대 중반에는 밀착형 사각팬티인 드로즈팬티가 등장했다.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가 유행하는 등 남성 옷차림이 변화하면서 젊은층이 허벅지 부분이 펄럭대는 트렁크팬티보다 드로즈팬티를 선호했다. 패션 바람은 남녀 구분까지 허물었다. 여성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엉덩이를 드러낸 T팬티가 출시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는 무풍지대였다. 90년대 중반 군생활을 했던 한 남성의 증언을 들어 보자. "러닝셔츠는 국방색, 팬티는 흰색이었다. 팬티는 한결같이 삼각이었다. 제대 후 얼마 안 돼 사각팬티가 나왔는데, 그건 가히 혁명이었다. 사회에 나와 색상이 다채로운 사각팬티를 한 번 입은 뒤론 더는 삼각팬티를 입지 않았다."

이랬던 우리 군의 속옷 문화에도 드디어 패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다음 달부터 드로즈팬티가 보급된다. 국방부는 "그간 삼각팬티와 사각팬티를 보급해왔는데, 신세대 장병들이 군마트에서 속옷을 별도로 구매하는 사례가 많아 선호도를 반영해 드로즈팬티를 보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입소하는 신병과 상병 진급자가 먼저 혜택을 본다.

군의 변화상이 반갑게 다가오지만, 한 가지 더 갖춰야 할 게 있다. 군납비리 척결이다. 군납비리는 속옷에까지 미쳤다. 러닝셔츠와 팬티를 독점 공급해온 한 업체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원가를 부풀려 100억여 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푹 삶아 빤 속옷처럼 깨끗한 군 사회를 보고 싶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