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은 일찌감치 끝났다. 국회가 겨우 정상화되긴 했지만, 전운은 여전하다. 별다른 문제도 없었던 정부조직법 개정안마저 국회의 지각 심사를 받을 정도이니…. 하물며 국회 인사청문회는 어떠하랴. 밥상 위에서는 '부적격 신(新)3종 세트'라는 해괴한 차림표까지 등장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세팅'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종 세트' 중 송 후보자가 가장 불량하다. 청와대는 그를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며 "해군 출신으로 군 조직과 새 정부의 국방 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비육군 출신인 송 후보자의 발탁과 민간인인 서주석 차관 임명으로 육군 중심의 군 체계에 강도 놓은 수술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방산 비리 척결도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희망 사항이다. 송 후보자에게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 가운데 고액의 자문료가 먼저 거슬린다. 그는 전역한 뒤 2009년 1월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자문직을 맡아 2년 9개월간 월 3000만 원씩 10억 원 가까운 자문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송 후보자는 '일반인이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다'고 표현했다. 이를 '변호사 업계라는 특수 직역' 외의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민의 눈높이'와는 도무지 맞질 않는다. 야권은 송 후보자가 당시 군사용어 등 단순 자문 역할만 하고 고액의 자문료를 받았다고 날을 세운다. 이에 대해 송 후보자는 "40여 년의 군 경력을 보유한 군사 분야 전문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런 세계'에서는 방산업체 관련 소송을 맡는 법무법인들이 소송 당사자의 유관 부처나 기관에 근무한 장성급 전관을 합류시키는 게 다반사다. '전문적인 군사 관련 조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월 3000만 원의 자문료는 정작 해당 업계에서는 '고액'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자격도 없는 해군 장성 출신을 왜 자문역으로 데려왔을까. 현역 후배를 겨냥했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2013년 3월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 중개업체 고문 경력에 의한 의혹 등으로 인사청문회 이후 낙마했다. 이듬해 5월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에 따른 고액의 수임료가 문제 되자 청문회 이전 사퇴했다. 안 전 총리 후보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전관예우이지만, 변호사 수임료라는 형식을 지녔으니. 국민적 신망도 송 후보자보다는 훨씬 나았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이에 대응하는 청와대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자세다. '촛불민심'에 힘입어 정권 교체가 이뤄졌는데 여야가 '자리'만 바꿔 앉았다. 9년여 전의 여당의 언사를 지금 여당이 답습한다. 새누리당이던 자유한국당 역시 마찬가지. 정치의 도돌이표다. 말하는 사람만 바뀌었다. 4년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 난맥상이 불거지자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느냐"고 항변했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도 똑같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귀환이다.

도돌이표는 최근의 여야 간 '반사 화법'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야권이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에 책임이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하자 청와대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 민주당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요구하자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전례가 없다"며 거부했다. 민주당은 지난해까지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며 '유체이탈 화법'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한국당 역시 "목표의식이 앞서다 보니 검증이 안이해진 게 아닌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꼬집어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재활용'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옛 여권의 화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정치의 퇴행이다.

이러니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협치는 '함께 통치'하는 것이다. 야당의 발목 잡기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지적은 되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에서 봐왔던 '내로남불'의 도돌이표를 들이댄다면 어느 야당이 협치에 나설 수 있을까. 내줄 것은 내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함께 통치'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정치는 명분이고, 실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