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정치, 예술, 문화, 노동 등 인간의 영역은 본래 놀이의 형태를 취했으며 인간은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았다고 하였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로 정의한 그의 말처럼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그러나 놀이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근대사회 이후 놀이는 아이들의 영역으로 주변화되었고 일과 놀이는 공간적·시간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산업혁명과 기술의 진보는 놀이보다 일의 가치를 더 인정하였으며, 그 결과 세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놀이와 분리된 인간은 대신 삶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잃게 되었다.

지금은 단순한 기술과 과학의 시대를 넘어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이 연결되는 초연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다시 놀이와 일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하위징아가 정의한 호모 루덴스의 귀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이제 전 세대에서 볼 수 있는 경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내일보다 오늘이 더 중요한 세상, 웰빙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과 여가를 일치시키는 것이 더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즈니스와 관광, 일과 즐거운 경험이 결합한 MICE 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은 놀이와 일이 하나인 호모 루덴스의 본성이 가장 잘 반영 된 산업이라 할 수 있겠다. 그중 블레저(bleausre)는 최근 MICE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를 결합한 합성어인 블레저는 회의, 출장 등 공식 일정 전후에 관광, 레저, 쇼핑 등 여가 활동을 즐기는 관광 소비의 한 형태이다.

블레저는 국내외 출장이나 국제행사 참석 시 공식 일정 앞뒤로 가족 동반이나 개인 여행을 즐기는 것이 일반화된 유럽이나 미주 등에서 2000년대 초부터 주목받고 있는 시장이다. 비즈니스 트래블 매니지먼트 기업인 CWT Global이 최근 5년간 2900만여 건의 비즈니스 여행객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출장자의 46%가 업무를 마친 후 휴가를 즐겼으며 연령대가 젊을수록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블레저는 최근 회의 개최 일수와 체류 기간이 줄어들면서 감소된 참가자의 소비 지출액을 늘리며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전시장은 "MICE 참가자들이 업무를 마친 후 무엇을 할까?"라는 콘셉트로 '애프트 워크(After Work)' 센터를 운영하며 참가자의 흥미를 끌 만한 공연, 쇼핑, 관광지 등 상품과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비즈니스 출장 중 여가를 통해 삶의 가치를 배가시키며 일과 놀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부산은 비즈니스가 있으면서 레저와 휴양 인프라를 갖춘 블레저 도시이다. 벡스코를 중심으로 쇼핑, 문화,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과 인근 해운대 관광 인프라 등 일과 놀이를 결합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부산이 대규모 MICE 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개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점점 더 기대치가 높아져 가는 블레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흥미와 관심을 끌 만한 매력적인 결합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에 관련 기관들의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즐거움을 동반한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행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는 '일'과 함께 인간 삶의 큰 축이다. MICE 산업도 즐거운 놀이와 색다른 경험과 결합하며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의 귀환 속에서 펼쳐질 부산 MICE 산업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벡스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