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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부산의 '마르 이 문타냐'는 무엇일까

오감으로 소통하는 음식, 지역문화 발전의 중요 브랜드

여름은 맛의 계절…미식가 위한 소통의 도시 부산 꿈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6-01 19:19:1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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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온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종전이 되자 태어나 일 년도 채 살지 않고 다시 서울 집으로 복귀했지만, 내게 부산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대학생 때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왔다. 태종대도 가보고 자갈치 시장에서 붕장어 회도 먹고 그랬다. 군대 생활은 전방에서 했는데, 짧은 기간 부산에 파견 근무한 적도 있다. 그때도 부산에 왔으니 바닷가에 가서 회를 먹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게 부산하면 '바다'였다.
   
오랜 해외 생활 후에 2000년대 초에 부산에 다시 오게 되었다. 내가 지금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양산과 부산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이번에는 부산·경남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금정산과 천성산을 등반하며 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참 산도 많고 산세 또한 기막히구나." 곁에 있던 친구가 바로 한마디했다. "니, 영남 알프스도 모르나!? 한반도의 척추를 타고 내려와 뒷발 들고 서 있는 저 호랑이 산세 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하려면 이 지역 산세를 섭렵해야 했다. 그 후로 부산, 울산, 양산, 마산 등 도시 이름에 죄다 '산(山)' 자가 붙어 있음을 각별히 여기게 되었다.

음식도 산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것을 찾게 되었다. 지리와 음식은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생선회, 고갈비, 붕장어 등이 단연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동래파전에도 기본으로 해물이 들어간다. 친구가 "이눔이 네발 달린 짐승고기 먹고 싶어 하나 부다" 하며 데려간 곳은 돼지국밥의 원조 할매집이었다. 금정산 산성마을의 염소불고기 집에 데려가기도 했다.

바르셀로나가 주도인 카탈루냐 지방의 대표 음식으로 '마르 이 문타냐(Mar i muntagna)'가 있다. 카탈루냐어로 '바다와 산'이라는 뜻이다.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와 산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카탈루냐 특유의 융·복합 요리이다. 해물과 고기를 절묘하게 조합해서 한 접시에 담아 내놓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이 요리는 오늘날에는 '마르 이 문타냐'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요리의 경로'를 구성하는 요리의 하이퍼텍스트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

카탈루냐에서 이런 요리가 가능했던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있고 동남쪽에는 코스타 브라바 해안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에는 각각의 특색을 지닌 다양한 전통 요리가 있다. 대세는 해물 요리이지만, 이들이 산의 식재료와 만나서 새로운 요리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도 의미 있고 부산을 상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관광의 차원에서도 부산의 매력이 될 수 있다. 환경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니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내가 왜 요리와 음식을 각별히 여기는지 의아해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전공인 철학·미학과 연관 있기 때문이다. 요리와 음식은 진지한 미학적 관심을 끌 만한 삶의 영역이다. 미학(aesthetics)이란 말은 학술 용어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감각에 관한 것이라면 좀 더 친근해질 수 있다. 우리가 미학이라고 번역해서 쓰는 '에스테틱스'라는 말은 원래 '감각'이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감각학'이 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오감이라고 해서 사람의 기본 감각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건 요리에는 이 오감이 모두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중요한 예술 분야는 인간의 감각 가운데서 시각 또는 청각처럼 어떤 하나의 감각을 미학적 통로로 삼고 있다. 그래서 미술은 시각예술이고 음악은 청각예술이다. 고대로부터 연극과 무용은 시각과 청각의 종합예술이었으며, 19세기 말 이후에 영화와 다양한 공연예술이 이에 가세해왔다. 아직 보편화되지 않고 어폐가 있지만 요즘은 영화의 '4D 상영'으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오감이 모두 동원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리 예술과 그것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식사 행위에는 오감이 모두 동원된다. 요리와 식사 사이에는 음식이 있다. 요리는 음식을 창조하는 기예이고, 식사는 그것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하는 행위이다. 요리에서나 식사에서나 시각은 중요하다. '보기 좋게 차려 놓은 음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후각과 미각은 당연한 것이고, 아삭아삭 씹을 때는 청각이 동원된다. 요리할 때 재료에 대한 촉각은 중요하고, 쫄깃쫄깃, 꼬들꼬들한 음식의 질감은 구강의 촉감과 밀접하다. 오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식사가 즐겁다. 식사를 즐긴다고 하면, 미식가나 식도락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식사에는 '감각적 즐김'이 암암리에 따라오게 된다.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을 수는 없고, 맛있게 차려 놓은 음식을 맛없게 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사실 어느 정도 '일상의 미식가'이다.

철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지과학이 중요하다. 음식 재료를 구하고 선별하며 요리해서 먹는 과정이 오감을 모두 동원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인지능력 발달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요리·음식·식사가 인간의 인지능력 향상의 원천일 수 있다는 현대과학의 가설을 어렵지 않게 추론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의 중요성은 소통에 있다. 미학적 차원에서 보면 음식은 오감으로 소통하게 한다. 브라질의 유명한 셰프 알렉스 아탈라는 "가장 강력한 소셜 미디어는 인터넷이 아니다. 페이스북도 아니다. 음식이다.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음식이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소통으로서의 음식'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도시든 '소통의 도시'라는 브랜드만큼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지역문화 발전에 요리·음식·식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동감하리라. 가을과 겨울이 '탐식의 계절'이라면, 봄과 여름은 '미식의 계절'이다. 부산은 사계절이 다 잘 어울리는 도시이지만, 특히 봄과 여름의 도시이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문턱에서 일상의 미식가를 위한 소통의 도시 부산을 그려본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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