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비정규직 김모 군이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화가 수북이 쌓였고, 애도 쪽지가 빼곡하게 붙었다. 그 가운데 컵라면도 있었다. 사고 당시 김 군의 가방엔 작업 도구와 함께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이 들어있었다는 사연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대놓고 "라면의 '라'자도 꺼내지 마"라고 외치는 영화가 있었다. 2014년 11월 개봉한 '카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비정규직 문제를 내세운 상업영화다. 5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 환경미화원 순례(김영애) 등 대형마트인 '더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선희는 고교생 아들과 TV에 빠져 사는 딸을 위해 직장에 매달리다시피 했으니 가정을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 그의 아들 태영(도경수)은 "라면의 '라'자도 꺼내지 마"라면서도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던 그녀들은 노조를 결성해 정면 대결을 선언한다. 급기야 정규직까지 노조에 동참하면서 사측과 대립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노조 위원장 동준(김강우)이 순례에게 이렇게 하소연한다. "정말 낙숫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을까요?" 노조원들이 단체로 맞춰 입은 조끼에 적힌 구호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이다.

이 영화는 노조 집행부의 양보로 파업을 접는 대신 조합원들은 복직했다는 내용의 자막으로 끝난다. 끝을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발도 만만찮다. 당장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이 나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정규직이 100만 원 벌 때 비정규직은 66만 원을 받는 사회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인 아빠가 정규직의 절반 수준 월급을 받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사회가 답을 줘야 할 때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그래서 필요하다.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와 영화 '카트'가 준 숙제이기도 하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