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통해 우리 정치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부산시의회는 연일 갈등과 반목을 보여 새 정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 17일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가 안건 상정을 보류한 일명 '소녀상 조례안'(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 논란 때문이다.
조례안을 발의한 정명희(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은 지난 18일 상정 보류를 결정한 복지환경위 8명 중 7명인 자유한국당 동료 의원을 맹비난했다. 그는 "다수인 한국당 의원들이 시민의 열망을 외면한 채 조례를 발의한 동료 의원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나 마나 한 표결을 통해 기습적 상정 보류를 했다. 시민의 대표인 동료 의원에 대한 예의도, 배려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2일에는 민주당 부산시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정 의원은 자신과 이진수 복지환경위원장에게 조례안 상정 보류를 요청한 박재민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대해 의회의 독립성을 침해한 '외압'을 시민 앞에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최인호 민주당 시당위원장이 박 부시장에게 조례안 상정 보류를 먼저 요청했다'고 주장한 박재본 시의원에 대해서도 공개 사과하라고 밝혔다.
이진수 위원장은 논란이 된 조례안 상정 보류에 대해 "당시는 문재인 정부의 문희상 일본 특사가 위안부 재협상 등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외교부가 부산시를 통해 상정 보류를 요청해 와 의원들 간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은 현행 도로교통법상 행정기관의 승인을 얻지 않는 불법 점용에 해당하므로 자칫 '한국 지방정부가 불법 조형물(소녀상)에 대한 합법적인 지원 조례를 만든다'는 일본 측의 악의적인 여론몰이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민감한 사안이어서 상정 보류를 논의하는 회의에 정 의원을 비롯한 복지환경위원 전원이 참석했다. 정 의원에게 상정 보류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후 기습 상정 보류를 운운하며 동료 의원을 개념 없는 '친일' 정치인으로 만들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민족의 아픔을 담은 소녀상을 지키고 보호하자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 새로운 외교 관계를 설정하는 시점에서 영사관 앞 소녀상의 '위치'에 대해서는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또 지원조례인 만큼 실정법상 불법 점용에 해당하는 소녀상에 대한 법적 정당성 확보의 문제도 있다. 그래서 대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는 식의 태도는 문제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 의원은 자신을 '시민의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7명의 한국당 의원의 표결에 대해서는 '하나 마나 한 표결'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자기 뜻과 다르다고 해서 적법한 절차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오만'이다. 이들은 시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부산시 내부에서도 박 부시장의 조례안 상정 보류 요청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업무 협조' 정도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시의 한 간부는 "정 의원의 주장처럼 부시장이 의회에 외압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는지부터가 난센스다. 외교부의 협조 요청을 의회에 전달한 정도"라고 말했다.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부 차장 yjk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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