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야누스다. 마술과 과학 두 얼굴을 지녀서다. 납·구리 따위의 값싼 금속을 금·은으로 만드는 불가능한 시도라는 점에서는 마술이다. 하지만 근대 화학을 낳은 토양이라는 측면에선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금술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4원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4원소설은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흙·불·공기로 이뤄져 있다는 학설이다.

연금술사들은 원소들을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고, 가장 완전한 물질인 금을 제조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를 촉진하는 신비의 물질인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상상의 나래를 폈다.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노력은 황산·인 등 물질 발견과 플라스크·증류기를 비롯한 화학기구 개발로 귀결됐다.

중국에선 금보다는 불로장생약인 연단(鍊丹)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른바 '중국연금술'이다. 연단술사들은 수은을 연단 제조의 필수 물질로 봤다. 연단술이 가장 유행했던 건 당나라 때다. 그 부작용은 컸다. 태종·헌종·목종·무종·선제 등 5명의 황제가 수은 중독으로 숨졌다. 부와 권력을 영원히 누리려던 허욕의 대가였다.

서양에서 18세기에 들어와 사멸했던 연금술은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를 만나 재조명된다. 그 전까지 이성의 종속물 내지는 방해물로 여겨졌던 이미지와 상상력이 그에 의해 인간 활동의 원천으로 이성의 우위에 놓여지는데, 연금술은 그 사상을 낳은 촉매제다. 바슐라르는 저서 '몽상의 시학'에서 "우리는 관념과 몽상의 복합체를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연금술에 관한 책을 과학사가로서, 심리학자로서 두 번 읽어야 한다"고 썼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연금술이 성행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대립 격화로 불거진 '한반도 4월 위기설'이 금값 급등과 금 거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의 연금술'인 셈이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금값은 이달 들어서만 4.18% 올랐고, 지난 14일 g당 4만6840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 이후 최고 수준이다. 금 거래량도 이달 들어 하루 3만1972g으로 지난달(2만1277g)에 비해 50% 늘었다. 위기의 연금술은 어디까지나 가진 자의 이야기다. 서민들은 불안에 떨며 대책 없는 정부 눈치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