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 목욕탕 사우나실은 '대선 토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대통령선거가 4주 앞으로 다가왔으니 그럴 법하다. 지난 주말 자주 가는 집 근처 목욕탕에서 귀동냥한 60,70대 어르신 두 분의 대화 한 토막이다.

"요사이 아침마다 '문(文)·안(安)인사'를 받으니 기분 괜찮군. 출가한 자식들도 아침에 인사 전화 한 통 안 하는데."

"허허. 그런데 말일세. 돈으로 표를 살 수 있다면 아무래도 안철수가 가장 유리하겠지? 요새 안랩 주가가 폭등하는 바람에 재산이 2000억 원도 넘는다잖아. 그 사람 재산이 1년 새 1000억은 더 늘었다고 하더구만. 문재인이나 홍준표는 재산이 한 10억~20억 된다지."

"어허 이 사람. 돈으로 표를 사다니? 그 무슨 3공 때 이야기를…. 요새 학교 반장 선거도 그렇게 안 하는데, 아이들 들을까 무섭네.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은 오래전에 대통령 되고도 남았겠네. 그리고 안철수가 사기 쳐서 돈 번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 팔라고 하면 자네 표는 얼마에 팔텐가?"

"어허 이 사람. 웃자고 하는 소린데, 정색할 것 까지야 있나. 실제로 돈 없다고 대통령 되지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나? 노무현도 지지자들이 모아 준 노란저금통 후원금으로 선거를 치렀잖은가. 내 말은 후보라는 사람들 스펙이나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들이 살아온 삶과 미래 비전을 함께 보고 표를 주자는 말일세. 우리가 한두 번 속았나? 지난번에 가장 크게 속았지만…."

다소 장황하다 싶게 이 대화를 전하는 것은 이 대화 속에 이른바 '장미 대선'을 앞두고 생각해볼 만한 것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과연 표를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다.

유권자의 '표'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마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거나,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일 수 있다.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욕망'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양한 국민의 마음을 더 많이 자기 쪽으로 돌려야 승자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보니 대선 후보들은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저서 '어린 왕자'에서 사막 여우와 왕자의 대화 형식을 빌려 이렇게 통찰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중략)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란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텍쥐페리 표현대로라면 이번 대선 후보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자 '기적'을 이루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미 돈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은 후보도 알고 유권자도 안다. 후보들은 어떻게 그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의 밑바탕에도 역시 경제적 행위, 즉 사고파는 거래의 속성이 거대한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후보자들은 국민에 자신을 팔려고 한다. 참모습이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정책 비전을 제시하면서 약속한다. 엄밀하게 말해 '절대로 부도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어음'을 발행하고, 유권자의 마음을 산다.

유권자는 모처럼 '대통령 쇼핑'에 나선 구매자다. 시장에 출시된 여러 명의 후보를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장고를 거듭한 끝에 자신의 가치나 희망, 또는 욕망에 부합하는 최적의 상품을 고른다. 그 상품을 얻기 위해 가치를 값으로 매길 수조차 없을 만큼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표'라는 형식으로 기꺼이 지불한다.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서 정치의 요체를 묻는 제자 자공의 물음에 '식병신(食兵信)'이라 답했다. 그중에서 최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信)'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그 '신(信)'이 깨지면서 졸지에 치러지게 됐다. 통째로 약속어음 부도 상황을 맞은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후보들이 어떤 약속을 내세워 상처 입고 분노한 유권자들의 '바람같은 마음'을 자신에게 머물게 할지 궁금하다.

믿음이 무너져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신뢰만이 최선의 무기라는 역설을 되새기면 도움이 될까.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