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11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2차 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사전녹화였던 10월의 1차 국민담화와 달리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면 민심이 바뀔 것이란 청와대 측 생각과 달리 담화를 본 국민들의 반응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터넷 등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의 정서를 아예 모른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몇몇 누리꾼은 대통령이 국민담화를 한 것이 아니라 '대국민 절교 선언'을 했다는 혹독한 평을 달기도 했다. 발언 내용을 볼 때 국민들과 소통을 하려는 의사는 전혀 없고 완전히 관계를 끊겠다는 태도로 여겨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누리꾼들이야 대통령의 발언에 냉소를 보내기 위해 그랬다지만 사실 절교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무슨 까닭이든 사람관계가 의도적으로 끊긴다는 건 쌍방에게 별로 득이 될 게 없어서다. 집단 절교라 볼 수 있는 '왕따'는 더욱 두렵다. 당사자가 받는 고통이 개인 간 절교에 비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수에게 따돌림을 당한 피해자가 종종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SNS 절교'도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SNS상에서 친구 관계를 끊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으면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냉혹한 표현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식이다. SNS 절교는 서구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unfriend(목록에서 친구를 삭제한다는 뜻)'라는 신조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그 전까지 unfriend는 사전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절교가 꼭 필요할 때도 있다. 특정인을 더는 가까운 사람으로 둬서는 안 되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겼을 때다. 그래서 옛 문헌은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같으나 그 때문에 더욱 친해지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나 그 때문에 쉽게 절교한다'고 정의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지후보가 다르다고 관계를 무 자르듯 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체 그 놈의 정치가 뭐길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는 말인가.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