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의 위치는 강원도 속초, 설악산 밑, 동해로부터 2.5㎞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외양간을 개조한 사무실에 우리는 남쪽으로 넓은 창을 두었다. 그 창문 앞에 멀리 경기도 수지에 계시는 분이 선물해주신 산딸나무가 있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창을 통해 산딸나무와 그 뒤편의 십 평 남짓한 텃밭 정원이 보인다.

이 집에 살게 된 첫해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차츰 늘 같은 고양이가 비슷한 시각에 나타나 창문 앞에 놓인 물확에 고인 물을 먹고 간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니 산딸나무에 날아오는 새들이 차츰 낯이 익었다.

늘 오던 새만이 오고 있다는 것도 곧 알아챘다. 우리와 같이 사는 이웃의 존재에 재미를 붙인 남편은 좀 더 확실하게 이웃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미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산딸나무에 사과를 매달아두고, 쌀을 뿌리기도 했다.

미끼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사과를 노린 직박구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사과를 먹고 갔다. 찾아오는 직박구리는 한 마리였는데 절대 자신이 독점한 사과를 뺏기지 않으려 했다. 다른 새들이 찾아오면 괴성을 지르며 쫓아냈다. 먹는 식성도 새마다 달랐다. 직박구리는 사과, 감 등 과일을 좋아 하지만 네 마리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참새 무리는 과일보다는 쌀과 같은 곡물을 더 좋아했다.

어느 날은 아주 낯선 이웃을 만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고양이인가 했는데 생김이 달랐다. 목이 유난히 길고 털빛이 가벼운 밤색으로 고왔다.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 그 이웃의 정체가 '족제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족제비는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데 아마도 겨울 동안 산속에 먹을거리가 떨어져 인가로까지 내려온 듯 보였다.

종종 겨울이 되면 멧돼지가 도심의 아파트까지 들어와 위협한다는 뉴스도 보게 된다. 이 멧돼지의 공포를 어쩌지 못해 우리는 잡거나 혹은 죽이는 방법을 택한다. 물론 멧돼지가 일으키는 농작물의 피해도 극심하다. 둥굴레 등 땅속에 남겨진 식물의 뿌리를 죄다 캐 먹기 때문에 농부의 근심과 미움이 얼마나 큰지도 잘 안다. 그런데 멧돼지가 사람을 위협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멧돼지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인간이 죽인 멧돼지의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속초 집을 구입하고 우리는 수리를 위해 경계측량을 했다. 이웃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 나의 땅의 경계를 분명히 해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측량 전문가들은 집의 외곽에 주황색 말뚝을 박아 우리 땅을 정확히 알려주고 떠났다. 그런데 이 경계가 정말 나의 소유일까, 문득 의문이 들곤 한다. 지구는 인간만이 소유하도록 허락된 곳이 아니다. 수많은 다른 생명체와 함께 땅과 하늘을 나누어 쓰고 있다.

등기부 등본을 내밀며 내 구역에 들어올 수 없다고 동물들에게 요구한다면 그들은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등기부 등본은 없어도 동물들도 자기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 안으로 다른 동물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방어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체는 이 지구의 모든 것을 함께 더불어 공유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참 신기한 장면을 본다. 천적인 물소와 사자가 물가에서 나란히 물을 먹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물소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자는 단지 배가 고픈 사자다. 이미 배가 부른 사자는 아무리 물소가 가까이에서 풀을 뜯고 있어도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소가 옆에 있다고 보이는 족족 잡아먹거나 식량을 비축하겠다고 사자들이 냉장고를 발명해 물소를 죽여 저장하기 시작했다면 물소의 씨가 마를 것이고, 물소가 사라지면 당연히 사자도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잘살기 위해서다.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잘산다는 것은 결국 이 지구라는 엄청난 생명의 공존 속에서 우리도 더불어 같이하며 자연이 허락한 우리의 수명을 큰 위험 없이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방법을 잘 배워야 한다.

우리의 공부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일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환경을 이해하고, 우리와 더불어 사는 다른 생명체를 알아가는 것보다 얼마나 더 중요할까? 경제시장의 원리를 이해하고,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을 공부하는 일은 이 지구라는 환경이 어떤 법칙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지에 아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일까? 왜 다른 동물과의 공생을 공부하지 않고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우리를 고립시키는 이상한 공부를 하고 있을까?

정말 이상하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많은 잣대와 가치관이 정말 그러한지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작가·가든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