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작가 루쉰(1881~1936)의 원래 전공은 의학이었다.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깨달은 바 있어 작가로 진로를 전환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탈로 패망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려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눈 감은 채 중국 우월주의와 봉건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국민정신을 계몽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탁월한 의학도의 자질을 십분 발휘해 내놓은 중국인의 정신적 병폐에 대한 진단 결과가 중편소설 '아Q정전'에 나오는 아Q의 '정신승리법'이다.

아Q는 동네 주민들의 일을 도와주고 받은 푼돈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가난뱅이지만 희한한 자존심을 가진 인물이다. 주민들의 놀림감이 되고 수시로 맞고 다니면서도 절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건달들이 자신의 머리를 담벼락에 짓찧고 모욕하는데도 십 초도 안 지나 만족해하며 발길을 돌릴 정도다. 스스로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데에는 자기가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자위다. "과거 장원급제자도 첫째가는 사람이 아닌가? 네깟 것들이 뭐라고 감히!" 어떤 패배도 아Q의 머릿속에선 간단히 승리로 바뀐다. 루쉰이 발견한 중국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중국인을 상징하는 아Q에 대한 '올바른 전기(正傳·정전)'를 썼다.

그 터무니없는 정신승리법은 20세기 초반 중국의 일만이 아니다. 최근 우리 정부 최고위 인사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당사자다. 그는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경제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공식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자국 여행사들의 한국 관광객 모객을 전면 금지하고,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보복 조치를 강화하면서 우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한국판 아Q', '유일호식 정신승리법'이라 할 만하다.

그의 정신승리법적 행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사드 배치 결정 직후에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돼 있어 경제보복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안이한 전망을 내놓았다. 어설픈 희망사항으로 뻔히 예상되는 사태를 미봉하려다 재앙을 자초한 꼴이다.

해서, 유 부총리에게 권하고 싶다. 아직 아Q정전을 읽지 않았다면 이참에 한번 읽어 보시거나, 읽었다면 다시 정독하면서 자신을 골똘히 반추해 보심이 어떨는지.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