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결국 사라졌다. 법정관리 신청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지만 당장 국내 1위, 세계 7위였던 국적 선사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보통 씁쓸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말 내려진 정부의 법정관리 결정은 너무 성급했고 후속 대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이 부분은 국정조사 등을 통해 명확히 밝혀내야 한다.
애초 한진해운은 법정 관리로 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어야 한다. 해운경기가 원체 불황이라 다른 나라는 거의 다 해운업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여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당연히 지원했어야 했는데 안 한 것은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무지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법정관리 후폭풍도 엄청났지만 파산 이후의 후폭풍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에 따라 대량 실업이 걱정된다. 부산시 소재 해운항만 관련 사업체 수가 2만6000개, 종사자가 15만 명 정도이다. 부산에서 한진해운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2만 명 정도 실업이 발생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국해운은 세계 6위의 위상을 자랑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것이 거의 반 토막 나서 10위 이하로 미끄러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진해운 침몰의 반사 이익은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외국 선사들에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자료를 보면 한진해운의 아시아∼북미 항로에서 빠져나간 화물이 세계 1,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에 대부분 옮겨갔다. 그동안 눈독을 들이던 항로를 고스란히 가져간 셈이다. 현대상선이 있지만 셰어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해운산업 전반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 후진적인 사회 분위기가 있다. 누구나 시키면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도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CEO로 앉아 있었다. 정부에도 해운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관료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상급기관이 해운을 몰라 주력산업을 죽이려고 하면 주무부처가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둘째로 우리나라는 혁신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혁신하지 않으면 당분간은 투자가 없으므로 이익이 더 발생하겠지만, 결국은 이것 때문에 망하게 된다. 해운산업은 지속해서 혁신하는 곳이다. 머스크는 계속 혁신을 주도하면서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을 만들어 내었다.
셋째는 해운에 대해 지식이 없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해운업계는 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몸집 불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는 독일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했고 일본 3대 정기선사는 컨테이너 사업부문을 통합하기로 했다. 하파그로이드의 UASC 인수, 코스코와 CSCL 합병 등 사례도 있다. 이처럼 글로벌 해운업계가 몸집을 불리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줄여버렸다.
지난해 발생한 한진사태는 우리도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였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도록 한 뒤 세계 5위의 해운사로 키운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해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애초 한진해운과 규모 차이가 큰 데다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는 현 단계에서는 역부족이다.
지금이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반성을 담은 백서도 나와야 할 것이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로부터 그 윗선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성적 고백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지금이 해운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해운기업은 사상 최저의 가격으로 선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경기 수준과 관계없이 경쟁력이 확보되어 기존 고가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선사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해운을 재건하기 위한 장기 전략이 나와야 한다.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해운 조선 및 항만을 전략적으로 엮어 통합 발전시키는 계획이 나와야 한다. 전문가를 양성하고 해양수산부 내에도 전문가를 포진시켜야 한다. 싱가포르가 오늘날의 세계적 해양산업 국가가 된 것은 정부 내의 해운 전문가 때문이라는 것을 정부 인사혁신처장은 알아야 한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