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의 블랙리스트가 세간의 화제다. 특정 인물을 지지했거나 현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과 단체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크고 작은 간섭을 해온 것이다. 그 이름들 속에 필자가 속한 인디고 서원이 있다. 청소년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은 직접적인 활동 지원 중단 대상이다. 리스트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취재해간 방송사와 신문사가 여러 곳이다. 모두 "지역에 작은 서점에까지 그 마수가 뻗쳤다니!" 하며 놀라지만, 정작 필자와 인디고 서원의 직원들은 이것이 전혀 새로울 것 없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디고 서원이 이번 정권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14년 7월 경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주최하는 공모사업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차 심의에서 1위였으나 윗선의 압력으로 최종 탈락했다는 소식을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전년도에 동일 기관에서 진행한 청년 인문학 캠프에 고은 시인을 초청했고, 초청 연사를 변경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그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 지원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심의돼야 할 리스트가 존재하고, 그 이름에 인디고 서원이 있으니 앞으로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 리스트가 아마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일 것이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년도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의 진행 과정이었다. 문화예술의 자생력을 신장하고 이를 행정적·정책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매년 문예진흥기금을 공모해 지원하고 있다. '인디고잉'이 2013년, 2014년 당선된 '우수문예지발간지원'도 문예진흥기금 사업 중 하나였다. 2015년도 사업을 위해 2014년 11월에 공모신청을 받았고, 12월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12월 29일에 결과발표가 지연된다는 공지를 남긴 채, 3개월 동안 하나의 공지 없이 결과는 무기한 지연됐다. 그리고 2015년 3월 31일 선정된 곳의 이름과 당선금액이 공개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확인하라는 내용으로 공모결과가 공지됐다. 세부 내용을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당선된 단체 개수와 전체 예산 규모는 전년도 대비 1/3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 뒤, 문예진흥기금은 몇 개의 지원사업만 남긴 채 모두 폐지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수차례 전화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을 요청했으나, 모두 묵살됐다. 단순히 공모사업에 떨어진 것으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에 2015년 4월 초,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고 있는 잡지와 이메일 소식지, 홈페이지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이 사실의 부당함을 고발했고, 또 몇몇 언론사에 제보했다. 바로 2015년 3월 30일 자 이 칼럼 란에 '내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포함해 밝혀지고 있는 많은 진실이 새로울 것 없는 것은, 이미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여러 차례 일어났기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끊임없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분명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용산참사 피해 유가족,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밀양과 강정마을의 주민분들이 그렇다. 필자 역시 듣지 못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이토록 거대한 진실이 감춰질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작고 힘이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사회, 그 사회를 바꾸어놓을 힘이 필요하다. 지난 9일 세상을 떠난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은 인디고 서원과의 인터뷰에서 당부했다. 좋은 사회란, 그 사회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 자가 많아질 때, 더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불의에 끝까지 맞서 말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힘을 회복할 때, 우리는 분명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 희망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 지금 우리가 기필코 해내야 하는 임무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