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생명을 다했다. 정치적으로 볼 때 그렇다. 이미 흐름이 잡혔다. 되돌리기 힘들다. 기득권의 상징, 수구 세력의 대표, 국정 농단의 주체 집단으로 상징화됐다.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빠르면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라질 수 있다.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가 없는 정당은 형식은 있되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늦어도 다음 총선을 넘기지 못하고 소멸하는 길을 밟을 것이다.

보수의 고갱이는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변화이다. 시대 흐름에 맞춰 점진적이고 안정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그것은 수구이다. 보수와 진보는 변화하는 방법론에서 구분될 뿐이다. 수구는 보수에도 있고 진보에도 있다.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한마디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보수는 왜 변화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래저래 분칠은 했지만 본질은 그대로였다. 그 핵심은 이른바 'TK(대구·경북) 패권주의'다. TK 패권주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후반기부터 서서히 움텄다.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심화됐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는 투박한 민낯을 내보였다. 수준이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이른바 '권력의 사유화'였다. TK 출신들이 요직을 다 차지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TK라는 울타리만 건재하면 영원히 권력을 유지하고 재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총선 때의 '진박 논란'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미운 사람 쳐내고 이쁜 사람 심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 무슨 보수의 가치가, 보수의 철학이 설 자리가 있었나. 권력은 내 것이고 정치적으로 TK는 내 땅이라는 패권적인 생각이 권력자의 인식을 지배했다. 권력은 오만했고 국민은 능멸당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판이 바뀌었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TK 패권주의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이다. 그것은 개혁보수신당의 출현으로 현실화됐다. TK 패권시대의 종언만으로도 보수는 진화했다. 보수가 거듭날 공간이 비로소 열렸다. 정치의 거듭남이다. 보수의 가치, 보수의 철학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개혁보수신당은 보수의 새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현 단계에서 봤을 때는 한계가 뚜렷하다. 노둣돌을 제대로 놓기도 전에 말 탈 사람을 모셔오기에 여념이 없다. 튼튼한 배를 만들 생각보다는 이름 있는 선장을 영입하는 데 생각이 쏠려 있다. 그가 과연 말을 탈 자격이 있는지, 험난한 항해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는 뒷전이다.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다.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다는 태도이다.

영웅이 우리를 구제해 줄 것이라는 일종의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승리 지상주의? 이것이 제대로 된 보수의 모습인가. 새누리당과 행태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앞뒤가 바뀌었다. 우선 보수가 무엇인지 철학과 가치를 분명히 정립하고 그것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 뼈대 위에서 인물과 결합해야 한다.

개혁보수신당이 영입하고자 하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출마 선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오는 12일 귀국하면 광폭 행보가 예고되어 있다. 그는 친박(친박근혜)계와 친문(친문재인)계를 제외한 정치세력의 통합을 꿈꾼다. 세력 간 연합을 통한 권력창출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문재인 대 반기문 1:1 구도를 만들어 대선을 치르기 원한다. 이 과정에서 개혁보수신당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가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검증받은 바도 없다.

보수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개혁보수신당이나 반기문 전 총장의 현재 행보는 낯익다. 과거에 많이 봤던 모습이다. 극복해야 할 과거 프레임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새롭지 않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잡는다 한들 대한민국의 리셋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인다. 개혁보수신당이 진정 보수의 거듭남을 꿈꾼다면 반 전 총장에 목맬 것이 아니라 먼저 보수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한 인물의 명성에 기대는 것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사례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개혁보수신당은 혁신을 통한 보수의 정립과 재구성에 박차를 가할 때만이 새누리당을 깨고 나온 진정성을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