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탄핵정국은 우리 정치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일상화된 촛불집회, '주갤러'로 대표되는 네티즌 수사대의 청문회 활약상, 정치 후원금 열풍 등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던 다수의 일반인을 정치의 장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으로부터 시작된 후원금 보내기 열풍은 탄핵정국에서 활약한 정치인에게 집중됐다. 원조 '거지갑' 박주민 의원에 빗대 '부산의 거지갑'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전재수 의원도 후원금 열풍의 수혜자가 됐다. 그는 "며칠 만에 통장 10여 개를 새로 발급받을 정도로 후원금이 쏟아졌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이내 후원금 '완판' 소식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국정조사 방해 임무를 부여받고 투입됐느냐'는 비판을 받았던 '최순실 국조특위'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18원 후원금'이 쇄도해 간사직을 사퇴해야 했고, 촛불집회 폄하 발언을 했던 김진태 의원도 '18원 후원금'과 문자메시지 폭탄으로 곤욕을 치렀다. SNS에서는 '18원 후원금 보내는 방법'이 공유됐는가 하면 '18원 정치후원금 세액공제'가 과연 사실이냐를 두고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18원 후원금'은 일반인이 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가성비 높은' 정치적 의사 표현 방식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의원만 18원 후원금 폭탄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엔 당 민주정책연구원의 이른바 '개헌 저지 보고서'와 관련해 특정 주자(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편향된 보고서라는 비판을 제기했던 김부겸 의원도 문자 테러와 18원 후원금 폭탄을 받아야 했다.

이제 국민의당이든, 개혁보수신당이든,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계 의원이든, 문 전 대표에 비판을 가하는 의원들은 누구라도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폭탄을 각오해야 하는 형국이 됐다.

자신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청문회장에서 읽히고, 또 자신이 보낸 1만 원이 좋아하는 의원이 신나게 의정활동을 하는 데 쓰인다는 건 그동안 투표 외에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 제한돼 있던 일반인에게 분명 유쾌한 정치 경험이다.

그러나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했다고 해서 타깃으로 삼아 문자 테러를 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보기 어렵다. 18원 후원금이나 문자메시지 같은 도구가 인터넷 정치에 강한 특정 세력들만의 무기가 되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목소리 큰 누군가의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정치인의 의정활동을 평가해 지지 혹은 비판할 수 있다면 우리 일상 가까이 다가온 정치가 더욱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울정치부 freesu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