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느낀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화두는 이렇다. 앞으로 부산문화회관이 재단법인화함으로써 과거보다 얼마만큼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이다.

부산문화회관에 와 보니 서울의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달리 편의시설 하나 변변치 않은 말 그대로 공연장일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공연장도 외국처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곳으로 꾸려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누구나 쉽게 찾아오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혁신이다. 영화계를 보면 과거 '겨울 나그네' 등 30만 관객이 넘치면 히트작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1000만 명이 넘는 빅히트 작품이 수없이 나오고 있다. 이는 과거 영화법을 통해 가위질하며 감독과 제재를 가했던 관행이 오늘날 사후검열이라는 과감한 제도로 탈바꿈되며 쌍소리도 거침없이 토해내는 등 그야말로 규제에서 해방된 결과물로 문화계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공연장도 혁신되어야 한다. 그동안 단순하고 다양하지 못한 공연장의 고정된 틀을 그대로 보여줬다. 달랑 공연만 보고 나오는 공간이었기에 관객이 문화예술을 멀게만 느끼는 데 한몫한 것이다.

관객이 공연장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공연장이 편리하고 가깝게 위치해야 하고, 등대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어야 찾기에 편하고 거기에 먹을거리와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관객들에게 편의시설을 제공해 준다면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도 공연관람 시간도 즐겁다. 지금은 공연장에서도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공연계는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클래식은 그렇다 치고 과거 무소불위처럼 흥행가도를 달리던 뮤지컬, 대중음악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음반에서도 불법복사가 판을 치고 저작권이 침해받는 등 우리의 공연시장은 아사 직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연말연시에 흥청망청 마시고 노는 문화에서 가족 또는 직장인들 중심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건전한 문화가 최근 싹트기 시작해 연말에 매진사례가 이어지면서 공연장은 잔뜩 고무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경제침체와 더불어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시행과 어수선한 시국상황 탓에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공연계를 보면 답답할 뿐이다.

공연장은 물론 예술단체마다 자구책을 마련하고, 이들 난관을 돌파하려 애쓰지만 한계가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부(지자체)와 더불어 많은 기업이 메세나(Mecenat) 운동을 통해 예술단체에 후원과 협찬을 해줌으로써 그 단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누군가 후원과 협찬의 차이점을 물은 적이 있다. 예술단체나 예술가를 돕는다는 취지는 같다. 굳이 차이를 설명하자면 '후원'이 정부나 공익단체에서 반대급부가 없이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라면 '협찬'은 티켓 또는 광고 등 기업들의 반대급부가 있는 조건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한 편이 만들어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술가가 긴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야 성공한다. 우리가 잘 아는 뮤지컬 '명성왕후'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만큼 성공하기까지 10여 년간을 여러 사람이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자리 잡았듯이 기업과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김영란법으로 인하여 초대권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반갑다. 과거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초대권을 가져오라고 호령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문화적 성숙도가 많이 높아졌다.

우리의 문화예술이 앞으로 10년, 100년 든든하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관심을 두느냐가 관건이다. 관심 없이 자란 아이가 성공할 리 없다.

예술인들에게 진정한 애정과 사랑으로 관심 두는 방법의 하나는 결국 티켓 구매와 공연장을 자주 찾아주는 것이다. 다가오는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관객들이 넘쳐나는 공연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재)부산문화회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