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많은 왕조를 가진 나라임에도 대표 왕조는 항상 '조선'이라고 여긴다. 최근 유행하는 우리나라 별칭도 많은 왕조 중에서도 조선에서 따온 '헬조선' 아닌가. 왜 우리는 아직도 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모든 사고와 틀을 조선에서 그대로 전승한 친근함(?)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책을 보면 조선은 중국의 절대 황제권 또는 일본의 막부 독재와 달리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룬 바람직한 정치구조를 가졌다고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절대왕정도 군부의 독재통치도 아닌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정치구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왕권과 신권만 있고 백성에 대한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치구조가 바로 조선의 통치구조이다. 조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대한민국도 국민에 대한 권리는 헌법에서나 강조되고 있지 실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권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고 신하의 나라도 아니고 바로 '사대부의 나라'였다. 한글창제, 과학기술의 발전, 육진개척을 통한 국토의 확대 등 조선의 최전성기는 세종 집권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많은 역사교양 프로그램이 세종의 각별한 애민정신은 강조하고 있지만 당시 백성의 삶의 질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세종 재위시절의 태평성대는 사대부에게만 해당되었지 백성의 삶은 피폐했기 때문이다. 세종의 애민정책에도 명나라에 대한 과도한 사대, 무거운 세금과 잘못된 통화정책 등 백성의 삶은 탐관오리가 득실득실했던 세도정치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중에서도 세종의 최악 업적은 바로 '수령 고소 금지법'이다. 세종 때 허조는 백성이 수령을 고소하면 최소 곤장 100대, 최대 사형까지 처하게 한 최고의 사대부 기득권 보호법을 발의하여 백성의 보호막을 합법적으로 제거하였고 세종은 이를 통과시켜 주었다. 세종의 애민정책은 사실상 이 법으로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득권 보호법은 조선을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유구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싶다.
왕조나 국가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구조이지 왕이나 대통령 같은 절대 권력자가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다. 한 번 집권하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는 왕조에서도 사대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정책이 달랑 5년의 단임제 대통령만이 움직여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정책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사대부가 올바르게 움직여야 한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가 종4품 이상의 문관을 의미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대부는 정치인, 공무원과 재벌을 의미한다.
작금의 최순실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대부의 나라이다. 최순실이라는 숨은 절대권력자와 결탁한 대한민국의 사대부는 '이게 나라냐'라는 오명을 덧씌웠다. 국민은 개돼지라고 이야기한 어느 고위공무원의 취중진담은 대한민국의 사대부들이 조선의 사대부 정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은 21세기 조선임을 증명하고 있다. 수많은 실패한 정책, 수많은 실패한 기업 등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진 것은 결국 국민이었다. IMF 사태의 주동자는 자신의 책임을 뭉개며 당당히 정책 책임자로 복귀했고 재벌의 사업실패와 상상을 초월하는 도덕적 해이는 숨은 권력자의 비호와 비정상적인 특혜로 덮였다.
대한민국 사대부들 역시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다. 국민의 희생으로 극복한 IMF 사태 이후 민초의 삶의 질은 시간이 갈수록 저하되는 데 반해 대한민국 사대부의 특권과 부는 왜 갈수록 깊어지는지에 대해 그들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젠 내 기득권만 건드리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조선 사대부의 사고에서 대한민국의 사대부들은 벗어나야만 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만화에 흥미 있는 구절이 있다.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이 화답하여 일어나 싸웠다'. 우리나라 국민의 이 독특한 유전자가 영원할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사대부들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이 유전자가 계속 이어져 사대부의 나라가 아닌 국민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명대 금융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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