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 초기 나온 여러 구호 중 단연 압권은 '이게 나라냐'였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하던 대통령과는 또 다른 자괴감에다 분노감까지 뒤섞인 국민 감정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런 황당한 대통령과 국가 권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불복종의 심리 또한 깔려 있었을 터.

5차례에 걸쳐 수백 만의 촛불이 활활 타올랐지만 자괴감에 휩싸였다던 대통령은 꿈쩍않고 있다. 세 번째 대국민 담화는 민심에 오히려 불을 질렀다. 참다 못한 촛불 민심은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그 스타트는 '시민 불복종의 날'이었다.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시민 불복종의 날로 선포한 지난달 30일 학생은 동맹휴학, 노동자는 총파업, 상인은 철시 등으로 불복종 운동에 불을 지폈다.

시민 불복종은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제시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나 정책, 법률이 도덕적 정당성을 못 가진다고 판단될 때, 자기 양심에 근거해 법률을 위반하는 행동을 일컫는다고 소로는 정의했다. 이런 정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시민 불복종 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왔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비폭력을 전제로 한다. 이런 까닭에 수백 만의 촛불에도 흔들리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민 불복종 운동에 당장 화들짝 놀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여러 비폭력 저항 운동이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걸 누구보다 현 정권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기 마련'이라는 발언도 권력의 이 같은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많은 집회 등 저항 운동과 맞서온 권력 또한 나름의 노하우가 없지는 않을 터.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판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제 시민 불복종은 저항의 일상화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등 각종 건물에는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펼침막 등이 넘쳐난다. 조기를 내건 집도 있다. 곳곳에서 1인 시위는 물론 소지역 단위별로 '풀뿌리 골목집회'도 번지고 있다.

이쯤되면 매일매일이 시민 불복종의 날이다. 노암 촘스키는 '참을 수 없는 악이 시민 불복종을 정당화한다'고 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참을 수 없는 악에 맞서는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더디지만 질긴 싸움이다. 시간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