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탄핵 절차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점을 택해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으나 그 내용은 분노의 촛불에 더 큰 불을 붙이는 건 아닌가 싶다. 앞선 두 차례 담화와 마찬가지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참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의 거취 문제는 결자해지 않고 국회에 공을 떠넘겼다. 조금도 바뀌지 않은 대통령 스타일을 다시 보여준 '독선 담화'로 숨은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부연했다. 언뜻 보기에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는 착각이다.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면 정국을 대혼돈으로 몰아가 당장 탄핵 동력부터 떨어뜨리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담화 직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민적 퇴진 요구에 대한 대답이다. 야권에 탄핵 일정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이정현 대표가 "국회가 헌법·법률 범위 내에서 논의해 대통령 거취를 결정하자"고 한 것은 3차 담화를 계기로 다시 국면 전환에 나선 모양새다. 새누리 중진들이 탄핵열차가 질주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명예퇴진을 들고나오고, 친박 일색인 초선의원들이 '탄핵보다 질서 있는 퇴진'을 촉구한 뒤에 나온 담화다. 탄핵의 초점을 흐리고 국민 분열을 획책하려 서로 짜고 친 느낌이 적잖게 드는 이유다.

임기 단축을 비롯해 자신의 진퇴 여부를 국회에서 결정해 달라는 것도 참으로 어이없다. 퇴진 시기나 방법은 최순실 국정 농단을 야기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직접 결단해야 할 문제 아닌가. 그것도 이런저런 조건 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국회에, 그것도 여야 합의에 따르겠다는 건 권력연장을 꾀하려는 꼼수로 비친다. 국회에서 대통령 퇴진 방법 등을 논의하는 건 친박세력 때문에 합의 도출도 안 될 뿐더러 백가쟁명과 정쟁만이 난무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또 이게 개헌론과 맞물려 정파 간 분열도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노린 게 이것이라면 나라야 결딴나든 말든 나 살고 보자는 비겁한 짓이다.

"대통령이 촛불 민심과 탄핵의 물결을 잘라버리는 무책임하고 무서운 함정을 국회에 또 넘겼다"는 야권 반응은 대다수 국민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새누리당의 "국정혼란을 막기 위한 결단이고 호소"였다는 논평에 동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국민은 이제 대통령 말을 믿지 못한다.

고립무원에 빠진 박 대통령의 얄팍한 '마지막 승부수'에 답하는 길은 중단없는 탄핵뿐이다. 야 3당은 3차 담화를 '탄핵 교란 작전 지시'로 보고 탄핵을 강행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대통령에게 촛불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지금은 탄핵밖에 없다. 담화 이후 새누리당 비박계는 좀 더 지켜보자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탄핵 찬성파에 일부 균열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심의 뜻에 따라 탄핵은 시도돼야 마땅하다. 반대표를 던진 여당 의원들은 그때 가서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