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탄금대는 국가 명승 42호다. 남한강과 달천의 합류지점에 자리해 경치가 뛰어나다. 신라 때 악성인 우륵이 가야금을 탔던 곳이어서 탄금대라 불렀다고 한다. 이런 낭만과 달리 탄금대는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이곳에서 8000명의 군사로 왜군에 맞섰다. 인근의 바위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독전을 했지만 끝내 왜군을 저지하지 못하자 신립 장군은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탄금대 전투를 전술적 실패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립 장군이 방어가 용이한 조령이라는 험한 고개 대신 벌판이나 다름없는 탄금대를 결전의 장소로 정한 것이 패인이라는 논리다. 다른 시각도 있다. 신립 장군도 이를 알았으나 병사들에게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각오을 불러 일으키려 탄금대에서 적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배수진(背水陣)'이다. 그래서 일부 역사가는 신립 장군이 비록 지기는 했지만 전략도 모르는 장수였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배수진은 1만 명의 병사를 가진 한나라 명장 한신이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채 죽기 살기로 싸워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됐다. 한신의 숙적인 항우와 관련된 '파부침주(破釜沈舟)'도 비슷한 의미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니 섬뜩함까지 느껴진다.

결사항전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지만 배수진을 친다고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부실한 배수진은 오히려 쉽게 무너져 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비리' 연루 의혹을 두고 황당한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박 대통령 퇴진 불가는 물론이고 검찰 조사마저 받지 못하겠다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인격 살인에 가까운 유죄 단정"이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뱉었다.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비리의 공범이 된 이상 갈 데까지 가보자는 계산에서 나온 듯하다. 버티기로 시간을 벌다보면 보수층 결집으로 위기 탈출의 기회가 생길 거라는 판단도 했을 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와대의 배수진에서는 비장함 대신 어떻게든 목숨을 연명하려는 치졸함만이 느껴진다. 민심에 정면으로 맞선 청와대의 '탄핵 배수진'이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왜 그들만 모르고 있을까.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