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이 19일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멘 학생들은 '내가 이러려고 뼈 빠지게 공부했나 자괴감이 든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통해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 씨의 딸 정유라(20) 씨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고3 수험생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전횡은 실력이나 노력보다 '빽'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화여대 교수들은 정 씨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특혜를 제공해 부정 입학시켰다. 입시면접관은 다른 응시생의 점수를 깎아 정 씨를 합격시키는 비교육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교수들은 부정 입학한 정 씨의 과제물을 대신해주고 정 씨가 내야 할 출석 인정서류를 직접 발급받기까지 했다. 권력에 한없이 약한 그들을 누가 '스승'이라고 부를까. 돈과 '빽'만 있으면 절차를 무시하고 반칙이 통하는 국가시스템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넘어 절망을 느꼈다.

교육현장도 무력감에 빠졌다. 학생들은 "최 씨 모녀의 '교육 농단'으로 노력과 정직이 삶의 우선 가치가 돼야 한다는 배움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한숨을 쉰다. 이런 제자들을 바라보는 교사들도 속이 탄다. 공정과 정의를 상실하고 특권과 부패가 넘쳐나는 사회를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 때와 똑같아요.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노력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 이면에는 불변의 실체가 있다. 1960년 4월 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때도 그랬듯이 오늘의 청소년들도 거리로 나와 국가사회 체계의 부조리, 권력부패, 밀실정치의 퇴출을 외친다. 그때처럼 지금의 학생들도 "좋은 대학보다 좋은 세상이 더 중요하다"고 외친다.

국민 전체가 무력감에 빠졌지만 이런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도 본다. 수능 시험 당일 도시락 가방에 든 엄마 휴대전화가 울려 퇴실당한 한 수험생은 엄마를 원망하기보다는 동료 수험생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자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에게 사과하는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 교육은, 우리 사회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걸까.

이제 희대의 교육 농단 사건의 끝을 볼 때가 왔다. 검찰은 정 씨의 특혜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개입 여부를 명백히 밝히고, 교육부는 신뢰를 잃은 대입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 최소한 상식적인 선에서의 정의는 지켜져서 우리 학생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길 바란다.

사회1부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