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주막에서 묵게 됐다. 주모한테 좁쌀 한 알을 주면서 "소중하니 잘 간수하라" 일렀는데 아침에 보니 쥐가 먹었다는 거였다. 젊은이는 괘씸한 그 쥐를 잡아 달라 요구했고 할 수 없이 주모는 쥐를 잡아 주었다. 다음 주막에서도 젊은이는 소중한 쥐이니 잘 지켜라고 당부했으나 이번엔 고양이가 먹어 버렸다. 고양이를 잡아 달래서 들고선 다른 주막에 맡겼으나 밤새 말에 밟혀 죽자 말을 끌고 갔고, 그 말이 다음 주막에서 소와 싸우다가 죽자 소를 끌고 서울까지 갔다. 이튿날 주모 아들 녀석이 어느 정승 집에 소를 팔았다고 하자 이젠 그 정승까지 데려오라 했다. 정승이 그 말을 듣고 시건방진 젊은이를 끌고 오게 해 저간의 상황을 알아보고선 탁월한 수완에 무릎을 딱 쳤다. 그 뒤는? 생각할 것도 없다. 교훈적 설화 내용이 늘 그렇듯 정승이 될성부른 놈이라 여겨 딸과 결혼시켰다.

이 설화 속 젊은이는 뭔가 대단한 기백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상 뒤집어보면 천하의 사기꾼이다. 한 알 좁쌀로 속칭 '뻥'을 쳐 예쁜 색시를 얻고 출세의 길까지 열었으니 말이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과다. 어쨌거나 역시 이야기에는 '뻥'이 좀 들어가야 흥미롭다. 남자들 군대 얘기도 그렇고.

'뻥치다'라는 말이 시장통 뻥튀기에서 유래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국어사전엔 '허풍을 치다'를 속되게 일컬음으로 나온다. 허풍은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해 믿음성이 없는 말이다. 거짓이나 가짜를 지칭할 때 '구라'라는 말도 즐겨 사용하는데 북한에선 '꽝포'라고 한다나. 뻥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낱말 중에는 '대포(大砲)'도 있다. 뜻은 무기지만 허풍이나 거짓말, 또는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빗대어 사용하기도 한다. 대포차, 대포통장도 여기서 연유했다.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대포폰도 마찬가지.

잡범들 전용의 대포폰이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줄줄이 나오니 어안이 벙벙하다. 최 씨는 4개나 들고 다녔는데 한 대는 청와대 핫라인이라는 증언이 있었다. '문고리 3인방'중 하나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집에서도 휴대전화 4개가 나왔는데 2대가 대포폰.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자택 압수수색에서도 대포폰이 나왔다. 왜 박근혜정권 실세들은 대포폰을 사랑했을까. 어떤 비밀스러운 업무가 있었길래 여러 개가 필요했을까. 2014년 대포폰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도 있는데 말이다. 가히 '대포폰 게이트'라 할만하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