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두 사람은 여론의 힘을 등에 업고 현재의 지위에 올랐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지만,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사상 최고 득표로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감독은 한화 구단이 한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여 2014년 감독으로 전격 영입했다. 그런 두 사람이 현재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서도 승승장구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거기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일궈냈다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신화까지 보태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과거 대한민국이 잘나가던 시절을 재현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다.
김성근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시절 가난한 구단 사정과 힘든 여건 속에서 하위권에 맴돌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김성근 신화를 만들었다. 그 후 여러 구단 사령탑을 맡다가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일궈내면서 야신이라는 칭호가 굳었다. 한화 이글스는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이었다. 한화 팬뿐 아니라 야구 팬이라면 자연히 김 감독이 이끄는 한화의 행보에 주목했다.
2014년 김 감독은 취임사에서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삭발을 지시하고 선임급 한 선수에게 수비훈련 시 3루에서 죽을 각오를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 감독의 말은 곧바로 현장에서 드러났다. 선수들이 훈련을 받으며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흙 묻은 유니폼으로 땅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처절했다. 로마 제국 시대 검투사 시합에 나서기 위해 훈련하는 선수들 같았다.
김 감독 부임 이후 한화에서 부상 선수가 많이 발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얼마 전 엠스플뉴스의 탐사 보도에 따르면, 김 감독이 올해 소속팀 부상 선수들에게 재활이나 수술 대신 주사를 맞고 계속 경기에 뛸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보복성 규제를 가했다. 팔꿈치를 다친 권혁 선수에게는 자비로 수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한다. 권혁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중간 계투로 12년 동안 활약하다가 2015년 한화로 이적한 선수다. 그때까지 매해 평균 50이닝 이상을 던진 적이 없는 불펜 투수였다. 그런 선수가 지난해 한화로 이적하자마자 불펜 투수로 나서서 112이닝을 던졌다. 올해는 팀당 144경기를 치렀는데, 권혁 선수는 66경기에서 95이닝을 던지고 팔꿈치 통증으로 중도에 하차했다. 이때까지 권혁 선수는 리그 불펜 투수 가운데 최다 이닝을 던졌다. 이렇게 투혼을 다한 선수에게 무통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자비로 수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니, 말문이 막힌다. 보통 시즌 중 다친 선수는 구단에서 책임진다. 올해 초에는 일본인 투수 코치 한 명이 "이건 야구가 아니다"라며, 김 감독의 지휘 체계를 비판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3명의 일본인 코치도 시즌이 끝나고 떠났다. 김 감독의 독선적이고 전근대적 야구 방식이 일으킨 문제였다. 야구 커뮤니티에는 김 감독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떠돈다. 눈앞의 성공에 매달려 선수들의 고혈을 짜내어 만든 희생의 결과를 두고 빗댄 말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들여다보면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대통령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히 드러났다. 그동안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그 사실을 감추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길 기다렸을 것이다. 지난주 박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 방송 뒤에도 여론은 더욱 험악해졌다. 대통령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이해할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그저 주변인들이 일으킨 사사로운 일로 치부하고 책임을 회피해버렸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낡은 방식을 고수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의 귀에 더는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하다. 5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말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한때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하려던 시대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시절 우리는 일찍 온 시대정신 앞에 낯설어하며 뒷걸음질 친 건 아니었을까? 그 대가가 참 혹독하다. 이제 다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는 구시대의 인물들을 이 시대에 소환했다. 그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가 직접 나서 그 책임을 질 때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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