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벌써 한 달 이상이나 지났다.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할 때 이 법은 대한민국 전역에 퍼졌던 부패의 고리를 송두리째 도려낼 극약처방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기업인의 활동 제약과 일반 시민의 관행적인 음식 대접, 명절 선물 등 일상생활까지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아직 상존한 채 법은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시민들은 언론 매체를 통해 김영란법 시행 찬반 논쟁이나 파급 현상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견과 글을 접해 오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법의 파급 영향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팽팽히 맞서왔음에도 지금 우리 일상 속에 서서히 연착륙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법 시행으로 인해 우려했던 고급 식당과 골프장, 유흥업소 등이 일차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역 화훼업계나 농축산 분야의 매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 서민들의 일상과 거리가 멀었던 소위 '접대 업종'은 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평소 경제 상황 따라 많은 부침을 겪어온 분야라 다양한 메뉴와 상품개발을 통해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다.
이 같은 우려에도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에게 던져주는 긍정의 신호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레저업계나 직장인들을 상대하는 학원가 등은 조심스럽게 특수를 기대하고, 가족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저가 식당은 매출이 늘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시민들은 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공직사회의 생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것이다. 법이 시행된 이후 만나는 많은 분이 던지는 첫 마디가 "요즘 힘들지?"다. 친구와 동창생이 대부분이지만, 심지어는 친·인척도 같은 질문을 한다. 얼핏 듣기에는 공직자를 위로하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이런 배려가 가득한 말이 그분들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 말하면 그분들은 아마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공직자들이 많은 접대와 청탁을 받아왔는데 지금은 법 시행으로 인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한 측은함을 표현한 것으로 느낄 법하다. 그동안 공직자들이 일상 속에서 갑의 모습으로, 때로는 청탁의 대상으로 모셔야 하는 존재로 시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분들에게는 김영란법이야말로 통쾌한 법으로도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직사회가 정말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건국 이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직자의 부패 방지와 청렴을 위해 수많은 법과 정책을 시행해 왔음에도 시민들에게 전혀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김영란법이 소비 위축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언론 통제의 우려, 사제지간의 따뜻한 마음의 표현까지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도 70%가 넘는 국민들이 법 시행에 찬성하는 이유다.
법 시행으로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우려하는 지적도 많다. 법 시행을 핑계로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개개인의 능력과 업무 처리 성향이 다 같을 수 없듯이 공직자도 성향에 따라 적극적인 업무 처리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김영란법과 별개로 논의되었으면 한다. 공직사회에도 끊임없는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랜 공직생활 하는 동안 필자 또한 다른 공직자들처럼 업무 편의를 부탁해 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모처럼 지인의 청탁을 들어 주지 못해서 쏟아지는 비난과 오해, 그 청탁을 들어줌으로써 또 다른 피해를 보게 될 시민을 생각할 때 오는 자괴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지금까지 청탁을 처리하느라, 청탁을 또 다른 청탁으로 연결하느라 불필요하게 소모했던 행정력을 오로지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 점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법이 공직사회의 팽팽한 긴장감마저 가져다준 건 국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힘들지?"라는 질문에 "아니오, 훨씬 좋아진 걸요"라는 답을 하는 공직자가 더 많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부산시 일자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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