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좋은 체력이 뭐죠?" 엊그제 카페에서 지인들이 내게 물었다. 요즘 누구를 만나든 오가는 말이 지진 얘기다. 그날 모임에서도 그랬다.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봤다. 천재지변에서 생존할 비법을 일러달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 갑작스러운 질문이 생뚱맞다고 느껴져 나는 "인명은 재천이지요. 죽지만 않으면 살지 말입니다. 허허허"라는 썰렁 개그로 자폭했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질문이 결코 황당한 게 아니란 걸. 궁금증이라기보다 차라리 절박감이란 걸. 이제 지진은 남 얘기가 아니다. 나 또한 얼마 전 몇몇 체력 전공학자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연구가 아직 없단다. 일본 등 지진을 자주 겪는 나라에서조차도. 이제 이 분야의 연구가 매우 절실해졌다. 어디 지진뿐인가. 우리는 태풍에도 해일에도 견뎌야 한다. 온갖 재난 대비에 유용한 매뉴얼과 심신을 예방하고 보호할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 현재로는 상식적 얘기지만 거동이 불편하지 않을수록, 체력이 좋을수록 재난에 잘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순발력, 평형성, 민첩성 같은 운동체력을 길러둬야 한다. 근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같은 건강체력도 필요하다. 또 조금 생소한 말이지만, 방어체력에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재난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생기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체력을 말한다.

재난 시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추위와 더위, 진동과 강풍, 대기오염과 산소 부족 등의 물리·화학적 스트레스, 바이러스 감염 등의 생물적 스트레스, 배고픔과 불면 등의 생리적 스트레스, 긴장 슬픔 공포 등의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우리는 체력 상태가 저마다 다르듯 스트레스 수준도 같지 않다. 극한환경에 똑같이 처해도 어떤 이는 침착하고 어떤 이는 당황한다. 당황하는 만큼 스트레스가 커진다. 그럴수록 재난 대응력도 떨어진다. 이뿐인가.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려 2차 발병으로 이어진다. 방어체력은 스트레스를 낮춰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유익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방어체력을 쌓는 데 좋은 방법은 뭘까. 나름대로 붙여본 이름이 있다. 'GOLF'다. 비싼 돈 내며 온종일 시간 잡아먹는 골프가 아니다. 푸른 숲(Green), 맑은 공기(Oxygen), 적당한 햇빛(Light), 그리고 걷는 것(Foot)이다. 일전에 숲 효과를 얘기한 적이 있지만 푸른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팍팍 풀린다. 그런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명품 산소는 행복 호르몬을 생성해 준다. 또 적당한 햇빛은 면역력을 키우는 데 크게 이롭다.

그리고 큰 강조점이 하나 있다.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심신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 그저 푸른 숲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쐬며 걷는 게 최고다. 이 밖에 몸을 늘 따뜻하게 만들고 편히 쉬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면역력을 올리는 데 좋다. 버섯, 마늘, 베리류, 견과류 같은 면역 강화식품을 자주 섭취하면 더 좋겠다.

경북 경주에 큰 지진이 일어난지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지만 SNS엔 지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가 아직 많다. "무서워 잠잘 수 없어요." "옆 사람이 떨어뜨린 물건에 심장이 쿵 했네요." 지진은 짧고, 스트레스는 길다. 지진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줄일 순 있다. 지진에 대비할 마음가짐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얽매이는 건 옳지 않다. 이제 밝은 마음으로 'GOLF' 하며 방어체력을 착착 쌓을 때다.

부산교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