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발전소에 수소 폭발의 위험을 덜고자 설치된 피동형 수소재결합기(PAR)의 품질 검증 역시 허술했다고 한다. 졸속 공사에 검증마저 엉망이었던 셈이다. 앵무새처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뇌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다는 점이다. 원전은 안전이 생명이고, 그 바탕은 국민의 신뢰다. 모든 원전에 설치된 PAR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3년 7월 경주 월성3호기에 PAR 31개를 설치한 직후 성능 시험과 육안 검사, 용접부 비파괴 검사를 했으나 작업할 때 격납건물 격실 벽에 생긴 많은 구멍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PAR 설치 이후 현재까지 두 차례 이뤄진 계획예방정비에서도 이를 찾아내지 못했으니 부실 점검이라는 지적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계획예방정비는 발전기 고장을 막고 설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40일가량 가동 중단 상태에서 실시한다.

이렇게 한국수력원자력이 만들어 보내준 '점검서'에 의존해 현장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상 없다'는 결론을 원자력안전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내렸으니 이 문제가 그동안 덮여 있었던 것이다. 원자로를 보호하는 시설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형 사고의 빌미는 결국 작은 허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원전 중대사고는 1억 년에 한 번 날만큼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던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와 함께 국내 원전 24기에 설치된 PAR 604개 중 80%가 넘는 490여 개가 '내환경 검증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야당 의원의 주장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PAR 설치 당시 격실 벽에 생긴 구멍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현장에서 뭉개버렸다는 증언까지 나온 마당이다. 모든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과 함께 졸속 공사 및 부실 점검의 원인 규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원전 안전을 지키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